전체 게시물 수 : 433, 2 / 29 페이지

이 름

김주향

제 목

갈로아와 투탓

엊그제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에

갈로아라는 곤충전문가가 나왔다

얼굴을 본 순간 엇, 경기고 마지막 해 수업 들어간,

우리반 옆반의 그 학생이었다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을 뿐

학교 교지를 맡고 있어

교내의 온갖 인재를 수집해야 하는 처지로 눈여겨 볼 수밖에 없던,

그림 재능이 뛰어나 교내외 상을 휩쓸던 그 학생이었다

내 교사생활의 클라이막스이자 내게 (비유가 아닌) 암세포까지 심어준

애증의 경기고.. 적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내 고통의 원인제공자였던 학생들까지 포함하여..

몇몇 학생 개개인은 지금도 눈에 선한데

가장 매력적인 부류가

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 눈에 띄지 않으면서

알고 보니 특정 분야에 몰입해 깊은 우물을 파는,

주변 친구들이 입을 모아 인정하는, 예술가 유형이었다

위 학생이 그러했고 주종목은 만화였다

당시 교지를 펼치니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학급 소개 코너에 이 학생이 그린 담임샘 캐리커처와 학급 스케치

해일샘 정말 똑같으시고 저 말투 육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

애묘인이신 특징까지 어쩜

앞줄 본인 포함 하나하나 포인트 정확히 잡아낸 급우들까지..

혹시나해서 전년도 교지를 펼치니

2학년 때도 담임샘 캐리커처를 그린 장본인이다

하샘의 군인 지휘관 같은 카리스마가 생생히 표현되었다

각종 수상작

만화재능 말고도 현재 곤충연구자로

각종 크리에이티브 채널들에서 유명한가 본데

학교 때 생태사진전에 곤충 사진으로 수상한 바도 있었다

이리저리 검색한 결과..

고등학교 당시부터 운영해 온 블로그가 있었다

방명록에다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뭐 그렇게까지..

이곳에서 조용한 회고전을 가져보는 것으로 그친다

지도교사로 제작에 참여해 공공재가 된 교지 수록작의

개별 저작권 신경 써야 하나?

도윤이가 알더라도 이해해 줄 것이다

어려서부터 본인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오며

절차탁마하여 현재 그 분야에서 자기 길을 가는 예술가

이와 관련해 또 한 명의 학생이 떠오른다

2000년대 후반 경일고에서 담임했던 우리반 정성갑

기운 없어 보이는 마른 몸에 검정 뿔테 안경이 얼굴의 반 이상이면서

말이 느리고 착한 도인 같던 그 학생이

축제 때 경천동지할 댄스 무대로 청중을 열광시키기 전까지

난 몰랐다, 교실에서 주로 자는 이유가

밤새 춤추느라 연습하느라 그렇다는 사실을..

청소 시간에 대걸레를 들고 중력이 없는 생명체인 양

교실 바닥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던 동작이

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면목고 때부터 남학생들의 파괴적인 댄스 무대를 봐 왔지만

이 장르는 차원이 좀 달라, 온몸의 관절을 정교하게 작동시키는

마리오네트 예술이나 쎄르크 뒤 솔레이 무대에서 보던

무언극 속 피에로 연기를 비보잉에 결합한 형태 같기도 했다

극도의 내향형 학생이 저런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니..

게다가 그 춤의 클라스라니..

그날 축제무대에서 엄청난 걸 보았다는 감동에 취해 나는

고교 축제 게스트라 해봤자 출연료도 제대로 못 받았을 텐데

공연한 팀원들과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어 보냈다

성갑이는 고2였던 당시에도 함께 활동하는 댄서들이 있었고

지역사회 비보잉 힙합 팝핑 등 스트릿댄스 씬에서 벌써 유명한 것 같았다

지금은 투탓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국제적 아티스트가 되었다

나이가 제법 있으니 지도자도 겸하고 있지 않을까

유튜브에 많은 영상이 있다

솔로 영상도 앙상블 영상도 배틀 영상도 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지 타 아티스트들과 격이 달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내향적인 그 정성갑이어서

외부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렴형 안무이고

장인적인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공기같은 가벼움,

그루브함, 고도의 신체 제어력은 봐도 봐도 경이롭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짐작도 안 간다

학교때 얼굴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미지(왼쪽)

반가워서 어딘가에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이 또한 뭐 그렇게까지..(<--매사 이것이 나의 세계관) 하며

영상이나 보는 중이다

넋을 놓고 보게 되네

10년 전 영상들


418	제발트의 영국 서퍽 해안 여행	김주향	2025/03/02	32

417	겨울 목탄 마무리	김주향	2025/02/21	26

416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김주향	2025/02/21	27

415	올빼미의 없음	김주향	2025/02/21	29

414	서울의 낮은 언덕들	김주향	2025/02/21	29

413	북쪽거실	김주향	2025/02/21	26

	갈로아와 투탓	김주향	2025/02/11	38

411	이달의 미식	김주향	2025/02/06	37

410	겨울학기 진행	김주향	2025/02/06	33

409	Gerhard Meier_Isle of the Dead	김주향	2025/01/20	31

408	새해 그림	김주향	2025/01/03	51

407	겨울 목탄의 재미	김주향	2024/12/27	44

406	카페모호	김주향	2024/12/22	43

405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발견과 전개	김주향	2024/12/22	41

404	앙토냉 아르토, 반 고흐론	김주향	2024/12/22	33


[1] 2 [3][4][5][6][7][8][9][10]..[29]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