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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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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우스터리츠, 이민자들, 공중전과 문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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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서퍽 해안지역 여행기..로 읽은
토성의 고리(1995) 이후
제발트 작품을 계속 읽었다
읽은 순서대로
아우스터리츠(2001)
이민자들(1992)
공중전과 문학(1999)
제발트의 작품들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높은 비중의 사실이 허구와 혼재되어 있고,
서술자와 작가가 거의 일치하기에
산문픽션 또는 산문내러티브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장르명칭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비평가들은 고민할 수 있겠다
그냥 에세이라고 하면 작품에 꽉 찬 그 문학성, 그 우아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할 테니..
아우스터리츠와 이민자들은
토성의 고리보다 주제의식이 강하고
문학적 응집력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제발트의 강연록과 강연내용의 보론으로 이루어진
공중전과 문학까지 포함해 이 세 작품을 내용적으로는
동일 카테고리에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의 두 작품은 20세기 독일 역사에서
나치가 주도하고 독일 국민이 암묵적으로 동조한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를,
제발트 식의 섬세하고 다층적인 기억의 기술을 통해
드라이하면서도 암시적으로 다루며
공중전과 문학은,
독일 지식인의 발언으로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2차대전중 독일 대도시 함부르크 쾰른 드레스덴 등지를
초토화한 연합군의 독일 공습을 다룬다
독일이 저지른 학살 범죄만큼
독일이 피해를 입은 파괴 행위에 대해서도
독일 전쟁세대와 전후작가들의 회피 및
모의된 침묵이 작동해 왔으며
종전 후 독일 재건 프로젝트에 신속하게 가려진,
참사에 대한 정확한 기억 및 기록의 누락, 애도의 실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제발트의 시각이다
이상 세 작품을 읽고 나서
제발트 인터뷰와 제발트에 대한 비평을 모은
기억의 유령을 읽었다
위 세 작품의 이해에 무척, 대단히, 선명하게 도움이 되었다
절판된 책의 세 배 가격을 주고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음에도
돈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제발트의 책들을 뭐랄까..
다른 각도에서 좀 가볍게 읽고 싶은 모양이다
유럽인도 아니고 독일인도 아닌 먼 곳의 독자라 허용될 수 있는,
복잡한 역사의식에서 비켜날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유대인과 홀로코스트는 실로 무수한 형식, 다양한 콘텐츠로
고발되어 왔기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와 이민자들이
그만의 독특한 문학적 패치워크를 보여주긴 하지만
독보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몇 년 전 돌아가신
서경식 씨의 책들이 내겐 더 와 닿는다
조선과 일본 사이 경계인과 디아스포라를 자처한 그는
제발트처럼 여행과 답사를 통해,
역사의식과, 예술에 대한 식견과 이해를 통해
전쟁과 식민, 억압과 차별, 난민과 소수자를 말하고
파시즘에 대한 고발을 멈추지 않았으며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에 대해 알게 해 주었다
아무튼..
20세기 독일과 유럽의 전쟁사를 통해
윤리적 문제에 천착해 들어간 제발트의 위 책들보다
조금 더 낭만적인 토성의 고리가 좋았고
위 책들의 내용 중에서도 중심 주제에서 곁가지로 나간,
인물들의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와 그들이 심취한
현실 너머의 어떤 세계, 가령 자연사 및 박물학의 세계라든가
인물들과 서술자의 숱한 길 위의 여정과 관련하여
고도의 지형학적 감수성과 고고학적 집중력이 작동하는
도시 공간과 건축물, 특히 폐허에 대한 묘사들이 매혹적이었다
사유보다 관찰과 지식이 압도하는 이러한 문장들에 나는 점점 더 끌린다
관찰, 그리고 지식
현재 내가 이보다 더 좋아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백과사전과 지도와 도감에서나 볼
나비, 나방의 종류
식물의 학명들
바이에른이나 웨일스의 마을 이름들
알프스 봉우리의 이름들
벨기에 안트베르펜과 리에주의 도시 건축물들
체코 테레진의 황폐한 거리에서 만난 잡화점 진열대의 물건들
이런 것이 열거될 때 나는 얼마나 희열을 느끼는지!
지식의 탑재랄지 특정 분야에 대한 심취와 몰두는
제발트의 인물들과 서술자에게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면에서 나는 제발트가,
작품에서 걸핏하면 옆길로 빠져 온갖 분야 박람강기를 자랑하던
토마스 만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아우스터리츠와 이민자들에서
식물학 곤충학 조류학을 아우르는 자연사 및 박물학, 광학과 의학,
건축사와 문명사, 천문학, 회화 등등에 대한 인물들의 심취와 몰두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떠도는 자의 구원이고
전쟁과 학살에서 살아남은 자의 공허를 메우는 위안이며
읽고 쓰는 자들의 고질병인 사유 강박, 논리정합성에 대한 편집증,
멈추지 않는 정신의 피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처방전이기도 했다
철저히 개인적인 이 영역의 효능이 비록 영원할 수 없었을지라도..
아우스터리츠와 이민자들에서
좋았던 부분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이를테면 아우스터리츠에서
주인공 아우스터리츠가
유대인 아동 이송프로젝트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칼뱅파 목사 부부에게 입양된 후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장소이자 오랜 세월 고향으로 알고 있던,
웨일스 지방의 척박함을 묘사한 대목들이다
발라 호수, 돌겔 초원, 드와이 포르 드와이 파치 같은 강 이름,
유서 깊은 축구 클럽으로 알고 있는 렉섬 같은 웰시어 지명들하며..
아우스터리츠가 기숙학교에서 만난
제럴드 피츠패트릭네 별장 묘사는 또 어떤가
그곳은 김루이같이 똑똑한 잿빛 앵무새를 비롯한
토종딱따구리 개미핥기 솔개와 꾀꼬리 들의 표본 상자
수집된 조개와 화석 풍뎅이와 나비
포르말린에 담긴 발 없는 도마뱀과 살무사
달팽이집 불가사리 가재와 게, 그리고
나뭇잎과 꽃잎과 풀 들이 들어있는 식물 표본 상자 같은 것이
끝없이 진열되어 있는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으로
찰스 다윈도 방문했다는 이곳의 중심엔.. 나방에 심취한
경이로운 자연연구가인, 제럴드의 종조부 알폰소가 있었다
아우스터리츠가 기억하는 알폰소의 강의는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바심이 났다 곧 끝날까 봐..
훗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아우스터리츠가 방문하는,
유대인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체코 테레지엔슈타트의
여러 장소에 대한 묘사들도 강렬한데
특히 게토 시설의 디테일한 묘사라든가
버려지고 방치된 건물들과 거리의 그토록 스산한 풍경은 마치
90년대 키에슬롭스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민자들의 첫 번째 이야기에선
한 인물의 애달픈 삶이 스위스 알프스 이미지와 연결된다
1970년경 영국 노리치에 정착하여
살 집을 보러다니던 서술자는 정원이 딸린 어느 집에서
땅에 엎드려 뭔가를 보고 있는 늙은 남자를 본다
집의 실소유 및 관리는 부인 몫이고
본인은 정원에 기거하는 자칭 장식용 은둔자라는 헨리 쎌윈
그가 그날 사과나무에서 따다 건넨 사과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사과의 이름이 뷰티 오브 바스였고
계약하게 된 그 집의 이름은 프라이어스 게이트, 수도원장의 문이었다
그렇게 서술자는 헨리 쎌윈을 알게 된다
쎌윈은 젊은 날 베른의 알프스 고지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등산의 매력에 빠졌는데 마이링엔과 오버아르에 머물면서
등산 안내인 요한네스 네겔리를 알게 된 후 칭겐슈톡
쇼이히처호른 로젠호른 라우터아르호른 슈렉호른 에비히슈네호른 등
수많은 산을 네겔리와 함께 올랐다고 회상한다
그는 네겔리와 함께 보낸 그 시절처럼 편안했던 적은
그전에도 그후에도 없었다며 전쟁이 터지고 징집이 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네겔리와 작별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네겔리는 사고로 실종되었는데
아레 빙하의 크레바스에 빠져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병영에서 이 소식을 들은 자신은 심한 우울증으로 의병제대할 뻔했다고..
많은 것이 말해지지 않고 생략되어 있는 이 이야기에
짙게 스며있는 노스탈지아와 상실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민자들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
서술자가 기억하는, 초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이었던
파울 베라이터의 수업 커리큘럼은 또 어찌나 황홀한지..
특히 자연과목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선생님의
식물학습과 야외관찰수업들
서술자는 선생님이 교재로 쓴 라인 가정의 벗에서
왜인지는 모르나 바젤의 목동 지팡이라는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하는데
순례자가 여관 여주인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 아스칼론의 해변에서
성스러운 조개나 예리코의 장미를 가져와 선물해드리리다
훗날 유대 정체성 때문에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낙인찍힌
파울 베라이터의 철로에서의 자살과
앞선 첫 번째 이야기에서 헨리 쎌윈의 엽총 자살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파 되새기기도 싫다
이민자들의 세 번째 이야기엔
미국으로 이민 간 서술자의 외가 친척들이 나온다
주로 서술자 어머니의 외삼촌인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의
국제 경험으로 가득한 일대기가 펼쳐지는데
당시 뉴욕의 영향력 있는 가문의 집사로서,
섬기던 금수저 코즈모 쏠로몬과
도빌 파리 베네치아 그리스 예루살렘 이집트 밴프 등등
세상 곳곳을 증기선이며 범선을 타고 돌아다닌 여행담은
읽는 이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남긴 비망록에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부분은 옮겨 적고 싶을 정도
서술자가 소개한,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1913년 9월 어느 날의
할아버지 기록에서 보들레르의 시 같은 도입부를 잠깐 옮겨 본다
어제 오전 피레우스(아테네의 외항)에서 출발,
육로로 힘들게 이동하는 동안 좀 초췌해진 듯
고요한 항해
갑판의 차양 아래에서 휴식함
그보다 더 푸른 바다는 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군청색
오늘 아침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함
가마우지들이 엄청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님
이른 오후, 앞쪽 멀리서 동방의 수도가 나타남
처음에는 신기루처럼 보이다가 차츰 푸르른 나무와 울긋불긋한 건물 들이 또렷해짐
그 앞 그리고 그 사이에 촘촘히 몰려 있는 배들의 닻이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나레트(이슬람 사원의 첨탑)들도 조금씩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뜨리에스떼(이딸리아의 항구도시) 출신의 선장에게 보수를 지불한 뒤
우선 페라 팔라스 호텔에서 내림
오후의 차 마시는 시간에 로비로 들어섬
코즈모는 숙박계에 이렇게 적었다
프레르 쏠로몬, 뉴욕, 중국으로 가는 중
프런트 책임자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페라는 저편이라는 뜻입니다
이스탄불의 저편이라는 이야기다
.
.
한편 이민자들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 서술자가
유대인 영국 이민자인 막스 페르버라는 화가를 만나던
60년대 후반 맨체스터 외곽의 선박용 운하 주변과
부두에 위치한 화가의 아뜰리에,
인근의 아프리카 이민자가 연 식당 와디 할파 등등의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한 이미지는,
작가가 배치한 사진들이 굳이 없었어도
한 폭의 장대하고 음울한 목탄화였고
막스 페르버가 서술자에게 넘겨준 어머니의 비망록에 나타난,
전쟁과 정치로 오염되기 전 슈타이나흐 지방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계절 풍습과 생활에 대한 곡진한 묘사 역시
간직하고 싶은 대목들이었다
끝으로
몇 개의 이미지들을 찾아보았다
아우스터리츠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서술자가 살짝 언급한
프리츠 랑의 1924년 무성영화
니벨룽의 노래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외모에다,
천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을 합쳐놓은 캐릭터로 보였는데
마침 프리츠 랑의 저 영화를 블루레이로 가지고 있어
찾아보니 곱슬거리는 금발의 지그프리트는 이런 이미지
책 표지의 어린시절 아우스터리츠 사진과 비슷하다
다음으로
아우스터리츠가 언급한
터너의 그림 로잔에서의 장례식
터너는 현장에서나 혹은 차후에 과거를 회상할 때
종종 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포착해서 재빨리 그렸는데
실체가 거의 없는 이 그림은 터너가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시기인 1841년 작품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점점 더 많이 사로잡히고,
어쩌면 이 로잔의 작은 장례 행렬처럼 어떤 것이 기억에서 떠오를 때,
몇 번의 붓질로 금방 다시 사라지는 환상들을
재빨리 붙잡아 두려는 시도였다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한다
이민자들 네 번째 이야기에서 막스 페르버는
16세기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언급한다
꼴마르 운터린덴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 이젠하임 제단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매장
막스 페르버가 보고싶다고 말한 그림은 정확히
하단 패널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매장이다
이 화가와 이 그림에 대해서는
제발트의 초기작 자연을 따라. 기초시에 더 자세히 나온다고 하니
곧 읽어볼 생각이다
역시 이민자들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쿠르베의 플래기의 오크로 알려진,
베르생제또릭스의 떡갈나무
베르생제또릭스는 로마 상대로 싸운 켈트 영웅의 이름
끝으로
이민자들의 각 에피소드 한 구석에 어김없이
나비채를 들고 카메오 출연하는 나보코프의 이미지는
딱 요 그림 아닌가
카를 슈피츠베크의 나비채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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