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김주향 |
 |
| 제 목 |
배수아리안과 정영문월드의 전개 |
|
나를 매료시킨 이 두 작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오랜 시간 창작과 번역을 병행해 왔다는 점이다
배수아 씨는 독일어권, 정영문 씨는 영미권 작품들을 번역해 오며
단기적으로 혹은 중장기적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나태한 탓이겠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우리 문학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에 있었으면서도
해외문학과의 동시대적 감수성이 느껴지지 않는 우리 문학에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해외문학에 일찍 눈을 뜬,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전공자들의
비평언어에는 확실히 끌렸던 것 같다
충분히 세계화된, 그런 것처럼 보이는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조차도
아직, 어쩌면 영원히, 운명적으로 우리는 갇혀있고
세계는 내 앞에 닫혀 있다는 인식이 나를 지배한다
그러한 답답함에서 최초로, 전격적으로 벗어났던 시기가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가며 도래한 영화의 시대였다
해방구는 다른 어느 매체,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영화였던 것
덕분에.. 90년대와 2천년대 초반까지 약 20년간,
영화사 포함, 자의식을 가지고 수행한 영화 학습을 통해
한국문학만으로 충족되지 못하는 문화예술영역에서의
세계성이랄까, 해외성의 한 자락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 이상의 것들까지 포함해서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
시간이 흘러 이제 영화보다 다시 문학이고
번역이라는 정신 활동을 매개로
해외문학과의 동시성을 단련해 온 작가들의 창작물과 큐레이션이
아직도, 언제나, 많이 갈급한 나와 같은 독자를 설레게 하고
설득시키는 지점까지 왔다, 영화가 그랬듯이..
아무튼..
배수아와 정영문의 책들이 아직까지 지루하지 않다
이어가는 배수아의 책들
그동안 읽은 배수아의 작품 가운데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가 최고였는데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도 비슷하게 좋았다
모두 다 강렬한 직관의 책들
유도동기의 반복과 변주에 의한 이미지 누적과 잔상
본질적으로 탐정소설이나 추리물이 아닐까 싶은
독창적인 미스테리 조성
조형이 되다 말고 스러져 가는 형태의
극도로 내성적인 언어들인데
신비하게도 엔딩까지 지탱되는 긴장감
가끔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물 같기도 하여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어떤 부분에선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수정 깃털의 새]의,
악몽처럼 반복되던, 통유리창 너머 상점 내부의 범죄현장,
지켜보는 시선 같은 게 떠올랐고..
최신작인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더하면 더했지 여전한 비타협성이며,
이전보다 더 고독해지길 원하는 듯한 작가의 문장에
마음이 놓이고 신뢰가 갔다
남편의 배신을 자녀 살해로 되갚는 충격적인 엄마,
신화 속 메데이아 모티프가 기억의 착란 속에 반복되는 부분이 강렬하고
악숨의, 황야풀 무성한, 우묵한 저지대 정원의 묘사가
특히 아름다워 읽고 또 읽으며
침입자 신고를 받고 조사차 방문한 경찰 두 명과
주인공이 대화중에 맥락도 없이 꾸린, 후반부의
말이 안 되는 독서모임 에피소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공동체로 꿈꿀 수 있는 대안적인 낙원의 한 형태로 보였다
배수아 작품들은, 책을 읽었다기보다
어떤 꿈같은 시공간을 통과해 온 느낌으로 남는다
초기작보다 지금 내놓는 작품들이 더 좋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은 몽골여행에세이로
LA데스밸리여행에세이인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이 그랬듯
그 어떤 여행기와도 닮지 않은,
배수아 씨만의 시선과 감각과 문체로 표현해 낸 여행에세이다
에세이 특성상 작가가 자신을 꽤 드러내고 있는데
소설에서 작가가 주로 무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면
여기선 오, 배수아 씨.. 공주의 면모가 있네? 싶어 재미있었다
이어가는 정영문의 책들
아래 세 권을 추가로 읽었다
<하품>과 <겨우 존재하는 인간>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창의적 패러디였다
전자는 아예 두 남자의 뜬구름 잡는 대화로 이루어진 희곡에 가깝고
후자는 명백한 소설 형태지만 나와 원숭이남자 간의 대화나 독백이 역시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연상시킨다
몇 페이지에 걸쳐, 기어가는 지렁이를 관찰하고
사유하는 대목이 잘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다
기회가 되면 옮겨 보겠다
한편 <겨우 존재하는 인간>에 동명의 소설과 함께 수록된
<환멸>의 부자관계는 카프카의 부자관계를 연상시킨다
2010년대 초중반에 발표한 네 개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오리무중에 이르다>는 최근작들을 통해 내가 매혹되어 있는
정영문 씨의 바로크적인 장려한 헛소리가
제 궤도에 안착한 작품집이었다
<개의 귀> <유형지 X에서> <어떤 불능 상태> <오리무중에 이르다>
네 편 모두 고르게 작가의 시그니처로 손색이 없는
단단한 형태와 재미를 선사한다 이중 <유형지 X에서>는
정영문 씨답게 괴팍하고 귀여운 심술이 느껴지는
아마도 엑상프로방스여행기일 것인데
이때 X는 엑상프로방스의 별칭인 엑스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어두운 숲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에 홀려 뒤따라가듯
정영문의 나머지 작품들도 사 들이고 있다
절판된 초기작들까지 중고상품을 뒤져가며..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전작을 모으고 싶다는 집착이 생긴다
매력적인 작가들의 초기작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너무 치열하고 너무 날 서 있고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배수아의 경우도..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쟁여놓은 책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