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상상력도 없고 감수성도 없는 한 원시 독일 철학의 재탕자, 독일 철학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그것으로 수십 년간이나 슈바르츠발트에 그의 교태스러운 쇠똥을 떨어뜨린, 끊임없이 새끼를 밴 철학 암소"
"하이데거 암소가 마르긴 했지만 하이데거 우유는 여전히 나오고 있지요."
"하이데거는 특별한 취향이 없으나 별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독일의 평범한 사람을 위한, 읽는 푸딩입니다."
등등
그런데 이 사람, 장광설의 주체인 레거라는 자는
자신의 외부만 까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도 까고 지인도 까고 자기 부모도 능멸하고
자신이 살갗을 맞댄 주변과 환경 모든 것을 저주한다
이같은 증오와 독설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증오와 독설이 내뿜는 에너지 및 비르투오소인데 이것이
개인의 어마어마한 기분과 변덕에 기초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비난과 풍자의 원천이 반드시 정의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복잡한 존재인 것이고
<몰락하는 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까지 세 권을 연달아 읽다 보니
체질적으로 신경을 갉아먹는 불안과 광기가
장광설의 주체 혹은 작가에게 내재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는 너무나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조목조목 대상을 비판하는
정돈된 텍스트만큼 지루한 게 있을까
그것을 원한다면 굳이 우리가 문학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알고 보면 죄다 쓰레기인 예술 가운데 그나마
장광설의 주체 혹은 작가가 인정하는 예술형태는 음악이고
인정하는 예술인은 글렌 굴드이다
<몰락하는 자>는 아예 굴드를 등장시킨 소설이다
<옛 거장들>에서 빈을 그리 까더니
<몰락하는자>에선 잘츠부르크를 어찌나 까대는지
오스트리아 여행을 꿈꾸며 빈과 잘츠부르크를 막연히 흠모해온
나의 관광객스러운 시선이 와장창 부서지는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 시골이 더 나은 것도 아니라는 게 작가의 시각이다
자연을 싫어하는 작가에게 시골은 끔찍하고 차라리 대도시가 낫다는 것
어쩌라는 건지.. 그저 어질어질할 뿐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위 두 작품에 비해
작가 자신을 더 드러내고 있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은 굴드만큼 천재과였던 실존인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으로
파울은 굴드와 달리 실제로 작가와 교분이 있었다
그는 예술과 정신에 관한 한 믿을 만한 천재이자 광인으로
정신병원에 드나들던 말년에 작가와 깊은 우정을 나눈 사람이다
작가는 파울의 머릿속에서 미쳐 날뛰는 광적인 도발에 대해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이, 심도 있게 이해해 들어가는데
천재에게 발생하는 광기/광증의 프로세스쯤에 해당할,
설득력 있는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나는 그와 같이 예리한 관찰력과 비상한 사고력을 갖춘 사람을 예전에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단지 파울은, 그의 재산을 그랬듯이 사고력마저도 끊임없이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던져진 재산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바닥나 버린 것에 반해 그의 사고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는 사고력을 쉴 새 없이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러면 사고력은 (동시에) 쉴 새 없이 증폭되었다. 그가 사고력을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지면 던질수록, 사고력은 더더욱 증가했다. 자꾸만 쉴 새 없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정신적 능력을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속도로 정신적 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처음에는 미쳤다가 나중에는 광증환자로 발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점점 더 많은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따라서 당연히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종국에 가면 그들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가 머릿속 정신적 능력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적 능력이 꾸역구역 쌓이다 못해 마침내 머리가 터져 버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울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그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니체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광적인 철학자의 머리가 마침내는 터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리에서는 그들이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잔인한 속도로 그치지 않고, 그리고 실제로 쉼없이 정신적 능력이 생산되고 있으므로 어느 날 그들의 머리는 터져 버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들은 죽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울의 머리도 어느 날 터져 버렸고, 그래서 그는 죽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p.36~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