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상의 발견
- 여행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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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2018 러시아 월드컵 &

월드컵의 재미는 항상 이런 패턴이다
1부 대한민국 16강 도전
2부 대한민국 탈락 이후


이번 월드컵 1부의 하이라이트, 보고 또 보는, 봐도 봐도 짜릿한 독일전 손흥민 골



2부는 집단 흥분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시간이다
일례로 오늘 새벽 벨기에-일본 전은 굉장한 극장이었다
2002년 우리가 그랬듯 기적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개최국 러시아도 놀라운데..
실은 개막 전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갈라 실황 중계를 보았었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러시아의 자랑인 게르기에프 마추예프 네트렙코를 비롯
도밍고 플로레스 등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들의 성악 향연보다,
피날레를 장식하던 불꽃놀이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한참을 울리던 종소리, 그 종소리였다
월드컵 유치의 성공과 러시아의 힘을 기원하는 그 주술적인 종소리
앞자리에 참석해 있던 푸틴과 피파회장이 아니더라도
축구는 정말 축구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이 전쟁이든 정치든



아래는 2011년에 썼던 졸고
학교 교지에 기고한 축구 관련 글
당시 학생들 유니폼에 새겨져 있던 선수 이름들은
메시 호날두 시대를 거쳐
이제 음바페 캉테 하메스 데브라이너 손흥민
이런 이름들이겠다..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보는 것의 좌절과 영광-

                                                                                 2011년 12월  oo고 교사 김주향

   오늘날 우리의 축구열기라 하면 K-리그, 국가대항전, 그리고 해외(유럽)축구 이 세 가지와 관련된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이 중에서도 나는 내가 유심히 살펴 온 국가대항전과 해외축구를 중심으로 교지편집부가 의뢰한,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라는 테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자는 전통적으로 국가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왔다. 이를테면 한일전이나 월드컵 경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기가 그것이다. 한편 해외(유럽)축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스포츠 자본의 유럽 시장으로의 집중, 고급축구인력의 국경을 넘어선 자유로운 이동, 근로대중의 여가문화 확대, 여기에 위성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전 세계인이 안방에서 실시간 경기를 시청하게 되면서 가능해진, 최근의 현상이다. 그러나 이상은 상황적 요인이고, 그 많은 스포츠 중 하필 축구가 대중을 사로잡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축구가 가진 원시성이라든가 역동성 등을 근거로 들지만 그런 스포츠가 딱히 축구만이겠는가.

    나는 축구경기가 고대의 전쟁을 닮았다는 점과 극장적(영화적)이라는 점, 이에 기인한 ‘스펙터클함’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 싶다. 축구는 빈 공간을 찾아 진을 짜 나가는 전법이다. 두 집단 간의 조직적 또는 비조직적 움직임에 의해 경기장엔 늘 전선이 형성된다. 그런데 그 전선의 스케일은 여타 스포츠 종목을 한참 능가한다. 박빙의 경기에서 미드싸움이 치열할 때 축구는 고대의 전쟁을 연상케 하며, 하프라인을 돌파하고 적진의 골문으로 쇄도하여 수비수를 따돌리고 골키퍼와 대항하여 슈팅을 날리는 공격수는 고대의 전사들에 비견된다. 첼시 드록바 선수의 득점 후 동작과 세리머니는 거대한 맘모스의 모가지에 창을 꽂은 뒤 포효하는 부족 최고의 전사인 것이다.

    이러한 축구의 이미지엔 다른 스포츠보다 날것에 가까운 원시성이랄까, 야성이 있다. 육체와 육체가 격돌하는 집단 스포츠 가운데 가장 넓은 야외 공간에서 모든 선수가 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충돌하는 축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이고 위험해 보인다. 또한 두뇌와 비교적 빠르게 연결되는 손에 대한 금기, 곧 발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지능적이기보다 본능적이며 그러기에 동작에 대한 결과 예측이 어렵다. 통상 패스는 세 번 이상 연결되기 어렵고 쇄도하던 공격수는 골문 앞에서 넘어지기 일쑤다. 사비 이니에스타 메시 비야 등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바르셀로나의 패싱플레이는 현재 우리 시대만이 누릴 수 있는 천상의 지복인데 실로 그런 경우가 축구에서 너무 희귀하기 때문에, 그들이 축구역사상 가장 진화된 경지의 플레이를 구사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지구최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축구는 하는 이나 보는 이나 지속적인 초조와 좌절에 시달려야 하는 스포츠다. 사실 축구 경기 전후반 90분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관전, 또는 시청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요구한다. 강한 집단적 기대와 승부욕을 유발하는 국가대항전마저도 조금만, 조금만 하며 기다려 온 전반이 끝나가도록 우리 선수들이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실점이라도 하게 되면 욕설을 퍼부으며 채널을 돌려버리고 만다. 화면을 찢고 들어가 차라리 내가 골문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한마디로 집단적 좌절인 것인데 신기한 것은 좌절이 극심할수록 성취는 더욱 달콤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비관하며 지쳐 자빠져 있을 무렵 홀연 골이 터진다. 천신만고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희귀한 득점의 순간 유난히 광기어린 희열을 맛보게 되는 것이 바로 축구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집단은 온 에너지를 빼앗기고 만다. 요컨대 기다림-좌절-또기다림-더큰좌절이라는 좌절의 연속 및 고조, 그리고 해소, 이 숨가쁜 리듬에 축구의 은밀한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축구는 전쟁을 닮았고 관중은 그 전쟁을 지켜본다. 그리고 흥분한다. 점잖던 넥타이부대, 평범한 우리의 아버님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고 험한 말을 내뱉으며 상대편 선수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이때 축구는 드라마이자 볼거리로서의 전쟁, 즉 러닝타임 90분인 한 편의 전쟁 스펙터클 영화에 가깝고 축구장 분위기는 다분히 극장적이고 제의적이다. 강렬한 집단의식에서 온몸에 아드레날린의 급류와 전율을 경험한 자는 또다시 축구장을 찾고 주기적으로 경기를 봐 줘야 몸이 풀리는 일종의 중독자가 된다. 그리고 중독자들이 으레 그렇듯 이들은 축구가 아닌 다른 것을 무료해하고 권태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해 흥분과 서스펜스의 재경험에 대한 갈망 속에 각자의 일상을 견딘다고 볼 수 있다. 수차례의 좌절을 예감하고 겪어내면서도 결코 단념할 수 없는 더도 말고 딱 한 골의 영광! 그것에 대한 기다림이야말로 우리가 축구에 열광하게 되는 핵심 정서가 아닌가 한다.


* 에필로그: 나의 축구 이야기
- 내가 축구를 열렬히 지속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여 년 전, 많은 이들이 그렇듯 2002 한일월드컵 전후, 유럽리그를 위성TV나 인터넷으로 안방에서 시청하게 된 그 즈음부터다. 베컴이 맨유의 상징이며 지단과 브라질 호나우도가 활약하던 때였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던 나는 스페인 여행시 바르셀로나 누캄프 구장을 구경하러 갔었고 레알 마드리드의 가장 어여쁜 유니폼으로 지금껏 기억되는, 지멘스 로고가 가슴에 박힌 아디다스 흰색 유니폼을 나름 짝퉁 아닌 진본으로 거금 주고 사 오기도 했었다. 2002 월드컵때 생전 처음 조퇴를 하고 인천 문학경기장에 가서 본 프랑스-덴마크 전의 열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지금처럼 남고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축구는 남학생들과의 대화의 창구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축구는 온라인게임과 더불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사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학생들은 나처럼 입(으로만 떠드는)축구가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뛰고 볼을 찬다. 축구를 몸으로 살아낸다고 할까. 너무나 경이롭고 부러운 모습이다. 새 학교 부임을 앞둔 올해 초 나는 남학교인 oo고와 oo고를 우선순위로 지망했다. 축구선수라면 오로지 박지성만 알고 호나우도와 호나우딩요를 구별하지 못하는 여학교에서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 남자와 달리 우리 여자는 축구가 좋아서라기보다 축구선수가 좋아 축구를 보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안드리 세브첸코에게 매혹되어 한 사오 년을 그의 열혈 팬으로 살았다. 지금도 내 컴퓨터 하드엔 폴더들마다 이 선수의 이미지 사진으로 가득하다. 우리 반 교실 뒤 게시판엔 이 선수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붙어있다. 세브첸코를 셰바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그에 대한 최신 뉴스와 사생활이 궁금해 인터넷 서핑을 해대며 영문기사까지 읽고 수집했었다. 셰바가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그가 출전하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온라인 생중계 채널을 뒤지고 밀란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용카드 유료결제 후 꼭두새벽에 일어나 챔피언스리그랄지, 이탈리아 반도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정규리그를 챙겨보기도 했다. 출근하면 나와 똑같이 그 경기를 보았거나 결과를 체크하고 등교한 학생들과 그 화제로 아침인사를 나누곤 했다. 축구사이트를 정기 순찰하며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셰바가 카카나 시도르프와 호흡을 맞추며 밀란 더비 같은 빅매치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을 때 환호했고 그가 경기중 교체되거나 부상 중이면 곧장 TV를 껐다. 첼시 이적 후 이 무결점 스트라이커가 망가져가는 과정을 극도의 집중력으로 지켜보면서는 혈압이 올랐었다. 셰바가 골을 넣은 날은 하루가 즐겁고 골을 못 넣은 날은 하루가 불행했다. 행불행의 극단을 오가던, 그 팬덤에 사로잡힌 감정의 진폭은 얼마나 피로했던가. 동시에 얼마나 흥미진진한 하루하루였던가.

- 올해 내가 부임해 온 oo고 학생들의 축구사랑도 그 어느 곳 못지않게 뜨겁다. 세계적인 국가대표 또는 클럽의 유니폼을 반별로 형형색색 맞춰 입고 좋아하는 선수이름을 등에 새기고 마치 그 선수의 레플리카인 양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헤이 가투소! 자네 디 마리아! 반 페르시! 하며 일일이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어진다. 돌아보면 올 한 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도 교내컵 대회에서 우리 반이 노랑 아스날 원정 유니폼을 입고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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