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김주향 |
 |
| 제 목 |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 |
|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_2006.3.1
20세기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에 관심이 생긴 것은..
2003년 겨울, 미국행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데릭 저먼의 [천사의 대화]를 보고 나서였다.
[천사의 대화]에는 <피터 그라임즈>의 '간주곡'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브리튼이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저먼이 브리튼과 함께 작업?, 혹은 브리튼을 활용한 것에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따라서 요새 와서라 하겠다.
[천사의 대화]의 모든 것에 도취되었던 나는
미국에서 보더스나 반즈 앤 노블 음반 코너에 들를 때마다
<피터 그라임즈>를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하기 수차례..
귀국하고도 음반 선택을 놓고 일 년 내내 망설이는
오랜 마음의 준비 끝에.. 드디어 감상을 시도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데이빗 애서튼이라는 사람이 연출하고
영국 국립 오페라단이 런던 콜리세움 무대에 올린
필립 랭그리지 주연의 공연영상물을 보았다.
오디오 시디를 들으며 그 많은 분량의 대사를
리브레토와 대조할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여
아무래도 한글 자막이 지원되는 영상물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생전에 브리튼 자신이 연주하고
그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애인이었던 피터 피어즈가 타이틀 롤을 맡은
50년대 데카에서 나온 음반을 들었다.
복잡한 선택이 요구되는 이 과정에서 아래 소개한 고클의
rumi82라는 필자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에서 나는 세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코러스로 표현되는 마을 주민들이다.
<피터 그라임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상 이들이다.
그들은 군중이고 집단이고 다수로서
의심하고 심판하고 평결하고 처벌하는 사람들이다.
의혹과 증오에 가득찬 그들의 사나운 눈초리와 광기 어린 코러스.
이것은 너무 무서웠다. 무대 앞 객석에서 이 오페라를
보았을 관객들의 공포가 어땠을 지 짐작되었다.
둘째.. 살인적인 가십에 포위된 어부 피터 그라임즈.
그는 개인이고, 집단적 증오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약자이다.
그는 부적응자이고 외톨이이고 고립된 섬이고
현대적 의미에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장애자이다.
그는 악당은 아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람, 충분히 수상한 사람,
요컨대 미친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비극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한 사회에 있어 미친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피터 그라임즈는 뱃일을 돕는 소년들의 학대 혐의,
나아가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며..
충동적으로 여자를 때린, 고로 언제고 또 그럴 수 있는 사람,
즉 가능성이 농후한 악당, 잠재적 악당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악당'보다 '가능성 있는 악당' 혹은 '잠재적 악당'이
사회적으로 더 위협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는 과연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으며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피터 그라임즈의 비극을 보며 나는.. 모든 비극은 ‘사회적’ 비극이고
모든 불행은 ‘사회적’ 불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작품에서 피터 그라임즈의 음역은 테너였는데
테너가 실성한 남자의 음역임을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
셋째로 이 오페라에서 내게 인상적인 것은 바다였다.
바다라고 하지만 망망대해나 심해가 아닌 어촌의 해안으로서,
콕 집어 말하면, 내 심상의 궁전 안에 오랜 시간 살아 온 영국의 해안이다.
그것은 <프랑스 중위의 여인>의 배경이 되었던
존재를 흔들 만큼 거친 바람이 불던 영국 해안이고..
다프네 뒤모리에 및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의 배경이 되었던
영국 해안이며.. 데릭 저먼의 많은 영화들에서
환상적인 블루톤으로 갈무리되곤 하던 바로 그 영국 해안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템페스트]에서 토야 윌콕스가
건강한 종아리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비밀스런 바위동굴마다
천년의 파도가 와서 부딪히던 푸르스름한 해안이고
화관을 쓴 요정들과 프린세스와 마법사가
짙은 꽃향기에 버무려져 뒹구는 한여름밤의 꿈같은 해안이며
[가든]이나 [천사의 대화]의 배경이 되었던
파도치는 도취와 몽상의 공간인 것이다.
<피터 그라임즈>의 바다는 위의 것들과 동일한
시적 아우라에 속해 있으면서 보다 수수께끼같고 보다 음산하다.
그리고 이같은 정서가 본격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
관현악 연주가 돋보이는 여섯 개의 간주곡Interlude들이다.
개인과 집단의 구도, 집단의 광포함, 인간이해 불가능성의 비극..
작품의 이 모든 요소들의 보편적 번안과 추상적 해석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 해안이라는 세팅만큼은.. 그것이 영국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어떤 비타협적 구체성을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What harbour shelters peace,
away from tidal waves,
away from storms!
What harbour can embrace
terrors and tragedies!
어떤 항구가
파도와 폭풍으로부터
평화를 지켜주나!
어떤 항구가 공포와 비극을
껴안을 수 있나!
- 피터 그라임즈의 노래 중에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