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악
- 음악 취향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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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토마스 만의 <바그너와 우리 시대>를 읽고



p.126~127
“바그너 작품을 알게 된 이후로, 그리고 인식을 지니고 작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이후로, 마법을 지닌 바그너 작품을 향한 열정이 줄곧 내 삶과 함께해왔다. 그의 작품을 즐기며 거기서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절대로 거기서 얻은 것을 잊을 수 없고, 극장의 군중 사이에서 누린 깊고도 고독한 행복의 시간들도 잊을 수 없다. 오로지 이 예술만이 제공하는 신경 및 지성의 떨림과 쾌감으로 가득 찬 시간들, 감동적인 위대한 의미를 꿰뚫어 보던 그 시간들을 말이다. 이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다한 적이 없고, 그것을 경청하고 경탄하고 감사하는 데 물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의혹이 아주 없지는 않았음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의심, 비난, 항의 등은 니체의 불멸하는 바그너 비판이 그렇듯이, 바그너 예술에 그 어떤 해로운 작용도 하지 않았다. 니체의 비판을 나는 언제나 뒤집힌 기호를 이용한 찬양이라고, 즉 다른 형식의 찬미라고 느끼곤 했다. 그것은 사랑의 증오이자 자기 거세였다. 바그너의 예술은 니체 생애의 거대한 사랑의 고통이었으니, 그는 바그너 예술을 사랑했다......”


역사적으로 바그너 음악에 매혹된 문화예술계 인사들,
혹은 지식 엘리트들의 딜레마는
압도적인 바그너 음악과 그 영향력을
바그너라는 논란의 인간과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었던 것 같다
대개의 경우 조화가, 통합이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즉 바그너의 음악은 위대하다, 그러나
인간 바그너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바그너 담론은 뉘앙스에 따라
사랑과 비판, 또는 숭배와 혐오가 공존해 왔는데
이 담론의 가장 예리하고 심오한 수준이
니체와 토마스 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읽은 바그너-니체 관련 책들에 따르면
니체는 생의 절반을 바그너를 숭배하며
나머지 생의 절반을 바그너를 혐오하며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숭배하며 찬사를 보낼 때나
혐오하며 공격할 때나 그의 문장들은 그 누구보다
바그너 음악, 바그너 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평생 바그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은 독일에서 제대로 된 바그너 비판은 니체밖에 없고
나머지는 헛소리일 뿐이라고 했으며
니체의 비판은 심리적으로 뒤집힌 찬양, 찬미라고 했다
만은 시기적으로 바그너에 대한 이러한
니체의 시각을 내면화한 상태에서 바그너를 체험하며
평생 바그너를 숙고하며 살았는데 그 숙고의 내용을
살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바그너와 우리 시대>이다
이 책은 1902년부터 1951년까지 50여 년에 걸친
바그너에 대한 토마스 만의 언설을 연대순으로 담고 있다
신문잡지 등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 및 강연원고,
즉흥적 발언을 담은 메모와 편지 등 다양한 형식이며 이중에서
그의 지식과 열정의 총합을 끌어내고 있는 하이라이트는
1918년에 발표한 <비정치적인 사람의 관찰>의 일부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정권 초기인 1933년에 발표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 그리고 1937년에 발표한
<리하르트 바그너와 니벨룽의 반지>이다
토마스 만은 바그너를 19세기 정신의 에센스 그 자체인
천재로서 효과와 최상급오락을 지향했던 극장에 미친 사람,
골수 무대마니아로 보았으며 창작자로서의 바그너는
심리학과 신화를 결합한 혁신적인 오페라시인이었음을,
트리스탄과 반지 같은 주요작의 분석을 통해 밝힌다
바그너에 대한 만의 입장은
사랑과 비판이라는 양가감정으로 요약되며
이후에도 시대에 따른 악센트 변화는 있었을지언정
큰 틀에서 밸런스를 잃지 않았다
나치에 의한 바그너의 정치적 이용에 맞서 비판적 어조가
더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의 진심은 늘 바그너 음악 그 자체에 있었던 것 같다
만은 바그너 음악 바그너 예술의 위대성에 경탄해마지 않으며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심지어 히틀러의 나치를 자극하는
근원적 씨앗을 품고 있는 인간 바그너에게서조차
바그너 예술을 지키고 보호하려 한, 진정한 바그네리안이었다
보수적인 기질상 고립된 서재에서 음악만 들으며 살고 싶었을 텐데
나는 그토록 오랜 세월 바그너와 관련된 공적 글쓰기와 강연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호기심이랄까.. 깊이 매혹된 자만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인식욕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이 점에서 그는 동시대 독일을 대표하는 문인이면서 교분이 있었던,
역시 단련된 클래식애호가이자 콘서트고어였던 헤세와 차이가 있다
헤세는 모차르트 바흐 쇼팽 등을 좋아했지만 내가 알기로
바그너엔 무관심했다 그는 바그너를 둘러싼 시대적 흥분과
극장적 도취를 진저리치며 싫어했다
토마스 만 못지않게 음악을 사랑했지만 그는
일종의 음악적 청정구역, 무균실에 머물렀던 것 같다..
요컨대 이 책은 어디를 펼쳐도
바그너에 대한 통찰과 영감이 꿀처럼 흘러내리는
바그너에 대한 책인 동시에 저자인 토마스 만에 대한 책이었다
니체의 비판을 통과한 바그너 열광이라는 점에서
토마스 만은 바그너에 관한 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며
무엇보다도 그의 비평적 문장은.. 읽을 때마다 매료된다
저 위에 인용한 문장만 해도 읽으면서 쿵쿵 가슴이 뛰었다
최고급의 바그너 비평서 중 하나가 아닐는지..
얼마 전에 읽은 초기 단편 <트리스탄>과 <벨중의 혈통>이 그러했듯
바그너의 영향이 드러난다는 만의 초기 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곧 읽게 될 것이고
바그너 얘기가 절반이더라는 소문이 있는 수 프리도의 니체 평전,
그리고 바그너, 니체와 함께 19세기 유럽의 정신사적 사건이었던
문제의 인물, 쇼펜하우어의 고전도 읽어나갈 계획이다
여기까지 오다니.. 클래식음악은 정말이지 인문학인 것 같다
특히 바그너라는, 음악에서 발원한 강력하고 다의적인 현상은
19세기 20세기를 지나 오늘날까지 사골의 사골을 우리는,
실로 파퓰러한 인문학 이슈, 인문학 장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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