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악
- 음악 취향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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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

<마의 산>보다 오래 전
토마스 만이 20대 때 쓴 단편인데
<마의 산>을 읽고 난 지금 이 작품은
<마의 산>의 스핀오프쯤 되는 느낌이다
아인프리트라는 스위스 요양원을 배경으로
환자인 클뢰터얀 부인과 작가 슈피넬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헌사이다
소설을 민음사 번역으로 읽은 후


전에 봐 둔 풍월한담 13호~15호에 실린
안인희 씨의 작품 해설을 다시 한 번 읽었다


<트리스탄> 초판본(1903)
이미지 풍월한담 13호


1903년경의 토마스 만


소설의 핵심 부분은
요양원 사람들이 눈썰매 소풍을 나간 2월말 어느 날
남아 있던 클뢰터얀 부인과 슈피넬이
휴게실에서 만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슈피넬이 연주를 강권하고
거절하던 클뢰터얀 부인이 마지못해 피아노 앞에 앉는데
쇼팽의 야상곡을 치고 나서 달아오른 영혼들이
찾아낸 악보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피아노 악보였다
연주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바그너 작품의
격렬한 감정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다
다수의 비평 및 강연문에 따르면 토마스 만은
젊은 날 어느 시기 뮌헨 궁정극장에서 이루어지는
트리스탄 공연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았다고 하며
바그너 작품 중 트리스탄을 단연 최고이자
가장 위험한 작품으로 거론하곤 했다
이 소설 <트리스탄>에 그 자전적 음악 체험이 녹아있다
아니 녹아있다기보다 아주 노골적으로 음악을 다룬다
때때로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임을 망각한 듯
서사에서 벗어나 장시간 음악 묘사에 몰두하는데
이런 짓을 그는 <마의 산>에서도 했고
<파우스트 박사>에서도 했다
음악 연주 부분을 안인희 씨 번역으로 옮겨 본다
작가의 음악 해석과 바그너의 대본과 두 주인공의 감정이
구분되지 않는 문장들이다


-1막 전주곡 부분

“그는 그녀 곁에 앉아 몸을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운 채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고통스러울 만큼 극단적으로 느리게, 각각의 음 사이를 불안하도록 길게 늘이면서 처음 부분을 연주했다. 밤에 길을 잃고 고독하게 헤매는 목소리인 ‘그리움 모티프[트리스탄 선율]’가 나직이 그 두려운 질문을 던진다. 정적과 기다림. 그리고 보라, 답변이 나타난다. 소심하고 고독한, 같은 선율, 다만 좀 더 밝고 좀 더 부드럽다. 다시 침묵. 이어서 저 억눌린, 경이로운 스포르차토(강음)가 나타난다. 마치 정열이 몸을 일으켜 행복하게 일어서듯, ‘사랑 모티프’가 위로 솟구쳐 올라 황홀경의 달콤한 절정에 도달했다가 떨어져 해체되어 물러나고, 통증을 간직한 무거운 환희의 저음으로 첼로가 등장해 곡조를 이어 간다.
보잘것없는 악기로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드러내려는 피아노 연주자의 노력은 성과가 없지 않았다. 거대하게 상승하는 바이올린 부분들은 빛나는 정교함으로 울려 나왔다. 그녀는 고귀한 경건함으로 연주했고, 각각의 형상에 헌신적으로 머물렀으며, 마치 사제가 가장 거룩한 것을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리듯 개개의 부분들을 겸손하면서도 또렷하게 높이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두 개의 힘, 홀려 버린 두 존재가 고통과 행복감에 잠겨 서로를 포옹한다...... 전주곡이 타올랐다가 잦아들었다. 막이 열리는 자리에서 그녀는 연주를 끝내고, 말없이 악보를 계속 바라보았다.”


-해가 보이지 않는 흐린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고
"2막을"이라는 슈피넬의 속삭임에 시작되는 2막 연주 부분
2장은 특히 바그너 대본의 직접 인용이 난무한다

“뿔 나팔 소리가 멀리 사라졌다. 뭐라고? 아니면 그건 잎사귀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던가? 샘물이 다정하게 졸졸거리는 소린가? 밤이 이미 숲과 집을 통해 침묵을 퍼부었으니, 간청하는 경고라도 그리움의 지배를 더는 막지 못한다. 거룩한 비밀이 완성되었다. 횃불이 꺼지고, 갑자기 은폐된 기묘한 음색으로 ‘죽음 모티프’가 내려왔으며, 그리움은 돌진하는 초조함으로 양팔을 활짝 열고, 어둠 속에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애인을 향해 하얀 베일을 펄럭이며 마주 달려 나간다.”(2막1장)

“오 영원한 피안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물릴 줄 모르는 과도한 환호성! 고통스러운 오류에서 벗어나, 공간과 시간의 사슬에서 벗어나, 너와 나, 너의 것과 나의 것이 녹아 합쳐져 드높은 환희가 되었다. 낮의 심술궂은 기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순 있겠지만, 마법 음료의 힘이 그들에게 눈길을 부여한 뒤로, 낮의 현란한 거짓이 밤눈 밝은 이들을 속일 수는 없나니 사랑에 빠진 채 죽음의 밤, 그 달콤한 비밀을 바라본 사람에게 빛의 망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그리움이란, 합일을 만들어 내는, 영원하고 참된, 저 거룩한 밤을 향한 그리움뿐인 것을.
오 내려오라, 사랑의 밤이여,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망각을 그들에게 주어라, 너의 환희로 그들은 온전히 휘감아서 기만과 이별의 세상에서 그들을 멀리 떼어 내라. 보라, 마지막 횃불이 꺼졌다! 세상을 구원하며 망상의 고통 위로 넓게 퍼지는 거룩한 어스름 속에서 생각도 의견도 가라앉았다. 저 기만이 빛을 잃고 황홀경에 내 눈길 부서진다 해도. 낮의 거짓이 나를 거기서 쫓아내고, 내 그리움의 진정될 줄 모르는 통증에 거짓을 마주 세운 그것,-그런데도, 오 성취의 기적이여! 그래도 나는 세상이다.-그리고 이어서 브랑게네가 어두운 목소리로 부르는 “들으시오”-노래에 뒤이은 저 바이올린 음의 상승, 모든 이성보다 더 높은 그 소리.
(연주는 방해를 받고)
사랑이 죽었던가? 트리스탄의 사랑이? 너와 나의 이졸데의 사랑이? 오, 죽음의 타격은 영원한 존재들에겐 닿지 못한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 말고는, 하나가 된 사람들을 속여 둘로 나누어 놓는 것 말고는 대체 무엇이 죽을까? 저 달콤한 “그리고”라는 낱말을 통해 사랑이 두 사람을 결합시켰는데...... 죽음이 그걸 찢는다고? 죽음이 상대방에게 주어진다면 자신의 목숨인들 어찌 다를까? 신비로운 이중창이 그들을 저 ‘사랑의 죽음[사랑을 통한 죽음, 사랑을 위한 죽음]’이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희망에 합의하게 한다. 영원히 나뉘지 않는, 밤이라는 기적 나라에 둘러싸여 있기로 말이다. 달콤한 밤! 영원한 사랑의 밤! 모든 것을 감싸는 행복의 나라! 예감 속에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어찌 두려움 없이 깨어나 황량한 낮으로 돌아가리오? 사랑스러운 죽음아, 두려움을 물리쳐라! 갈망하는 자들을 깨어남의 고통에서 완전히 풀어주어라! 오, 평정심 모르는 리듬의 폭풍이여! 오, 반음계로 솟구쳐 오르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황홀경이여! 나누어 놓는 빛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이 환희를 어찌 잡으랴 어찌 놓으랴? 기만도 두려움도 없는 부드러운 갈망, 고통 없는 고귀한 소멸, 헤아릴 수 없음[=죽음]에 잠겨 행복하게 어두워짐! 그대 이졸데, 트리스탄 나, 더는 트리스탄 아니고, 더는 이졸데 아니고-”(2막2장)


-악극 마지막 ‘사랑의 죽음’ 연주 부분

“그녀의 입술은 얼마나 색깔 없이 명료했던가, 눈가의 그림자는 얼마나 깊었던가! 눈썹 위쪽 투명한 이마에선 긴장되어 불안하게 연푸른 실핏줄이 점점 또렷해졌다. 피아노를 치는 손길 아래서는 가차 없이 갑작스러운 피아니시모로 나뉘며, 마치 발밑에서 바다가 꺼지듯, 숭고한 욕망 속에 가라앉듯,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상승이 이루어졌다. 무시무시한 해체와 충족의 과도함이 왈칵 나타나 되풀이되고, 절도 없는 만족감의 먹먹한 굉음이 지칠 줄 모르고 거듭 되돌아와 형태를 바꾸며 숨을 거두려는 듯하다가 한 번 더 ‘그리움 모티프’를 화음 안에 짜 넣고, 숨이 끊어져 죽고, 소리가 멀어지며 사라졌다. 깊은 정적.”(사랑의 죽음)



이 소설을 읽고 어찌 트리스탄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에서 피아노로 연주되고 있으니
오늘은 피아노 편곡 연주들로

1막 전주곡



2막 2장 러브 듀엣



사랑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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