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악
- 음악 취향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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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토마스 만의 악기 창고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이어 읽고 있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헤세보다 만이 더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음악적 식견을 전개해 나갈 때 돋보이는
디테일 때문인 것 같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에 따르면 토마스 만에게는
음악에 대한 전문적 조언자가 곁에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주인공인 천재 음악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숙부인
니콜라우스 레버퀸 소유의 악기 창고 묘사 부분


그는 독일에서 악기 제조의 중심지인 마인츠, 브라운슈바이크, 라이프치히, 바로멘 등의 지역뿐만 아니라 런던, 리옹, 볼로냐, 그리고 뉴욕까지 포괄하는 외국의 악기상들과도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지역들로부터 교향악에 필요한 악기들을 입수했는데, 그것들 중에서도 질적으로 최고일 뿐 아니라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완벽한 악기들을 포함한 명품들을 보유한 것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어디에서든 바흐 축제가 열리기만 하면 파로키알 거리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먼 길을 찾아 온 단골손님 음악가의 방문을 받았다. 스타일에 맞는 연주를 하려면 이미 오래전부터 관현악에서는 쓰지 않는 저음의 오보에, 즉 오보에 다모레가 필요했고, 그 단골손님은 원하기만 하면 바로 즉석에서 그 애조 띤 악기를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중이층의 그 악기 창고에서는 간혹 전체 옥타브를 시험해보는 소리들이 온갖 음색으로 울려 퍼지곤 해서 절묘하고 사랑스럽고 문화적인 매력을 간직한 장면을 제공하고, 마음속에 음향의 환상이 끓어오르게 했다. 아드리안의 숙부가 피아노 전문 산업에 양도한 피아노를 제외하고, 콧소리를 내는 악기, 굉음을 울리는 악기, 딸랑거리는 악기, 꽝꽝 울리는 악기 등 소리 내고 울리는 모든 종류의 악기가 거기에서 보급되었다. 그 밖에 귀여운 실로폰 모양의 ‘첼레스타’라는 건반 악기도 있었다. 노란색이나 갈색 래커 칠이 된 매혹적인 바이올린들은 유리 진열장 안에 걸려 있거나, 아니면 악기 형태에 따라 마치 미라의 관처럼 만들어진 상자 속에 들어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을 은도금한 날씬한 활들은 그 상자 덮개에 부착되어 있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양으로 보아 첫눈에 크레모나 산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이탈리아 제와 티롤, 네덜란드, 작센, 미텐발트 등지에서 만든 것, 그리고 레버퀸 자신의 작업장에서 만든 제품도 있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덕에 완벽한 모양을 갖추게 된, 선율이 풍부한 첼로도 즐비했다. 그리고 첼로의 전신이라 할 악기로, 약간 옛 작품에서는 아직도 그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는 6현의 비올라 다 감바도 있었고, 브라체와 바이올린의 또 다른 사촌인 비올라 알타도 언제나 볼 수 있었으며, 평생 그 일곱 줄에서 내 손이 떠나지 않았던 나의 비올라 다모레도 거기에 있었다. 나의 비올라 다모레 역시 파로키알 거리의 그 집에서 나온 것인데, 내가 견진성사를 받을 때 부모님이 선물로 사 주신 것이다.

그곳에는 보통 바이올린과 대형 바이올린, 움직이기 힘든 더블 베이스의 다양한 견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더블 베이스는 장엄한 레시타티브에 사용될 수 있는데, 그 피치카토 주법은 어떤 팀파니를 치는 것보다 더 잘 울리며, 더블 베이스에 플라졸레트(현악기로 플루트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연주 기법)의 마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였다. 목관악기 중에서 그것과 짝을 이룰 만한 것으로 더블 바순이 있었는데, 이 악기는 더블 베이스와 마찬가지로 16음보식으로, 다시 말해 원래 음표가 가리키는 것보다 한 옥타브 낮은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더블 바순은 저음부를 힘 있게 보강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동생뻘인 스케르초 바순의 두 배 크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가 그 악기를 스케르초 바순이라 부르는 이유는 원래 소리가 약하고 떨리는 듯이 익살스러워서, 저음을 낼 수 있는 힘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구불구불한 취주관은 얼마나 멋지며, 그 조성판과 지렛대는 얼마나 근사한가. 또한 목가풍의 오보에, 구슬프게 들리는 잉글리쉬 호른, 낮은 셀류모 음역에서는 유령의 울음소리 같은 음울한 소리를 내지만, 고음으로 올라가면 은빛 광채를 발하는 밝은 음을 낼 수도 있는, 조성판이 많은 클라리넷, 테너 클라리넷, 그리고 베이스 클라리넷이 있었다. 제각기 맵시대로 대가들의 충동을 자극했던, 고도로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이 목관악기 무리를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단에 고이 둘러싸인 채로, 레버퀸의 숙부 재산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너도밤나무, 그레나딜 목재, 흑단, 상아, 혹은 순은으로 만들어져서 다양한 기관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내는 횡적들이 있었고, 그것들과 유사한 악기로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피콜로가 있었다. 피콜로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함께 어우러진 합동 연주에서 날카로운 음높이를 유지하고, 도깨비불의 윤무 속에서, 불의 마법 속에서 춤출 줄도 알았다. 그리고 해맑은 신호와 기운찬 노래와 간장을 녹이는 가곡을 만들어 내는 멋진 트럼펫과, 복잡하게 생긴 밸브식 호른, 날렵하고 힘찬 소리를 내는 글리산도 트럼본 및 피스톤 식 코넷 같은 낭만주의 음악의 사랑을 받은 악기들을 거쳐, 무겁게 저음을 깔아 주는 커다란 베이스 튜바에 이르기까지 반짝거리며 빛나는 금관악기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쇠뿔처럼 좌우로 돌려지는, 아름답게 구부러진 한 쌍의 청동 루네(금관악기의 하나로 3~5개의 판을 가진, 장중한 저음을 내는 대형 나팔)처럼,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악기들도 레버퀸의 숙부네 악기 창고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어린 눈으로 볼 때, 오늘날 기억 속에서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멋졌던 것은 타악기들을 한데 모아 진열해 놓은 것이었다. 일찍이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서 우리가 어린애 장난감처럼 여기거나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악기들이 그곳에서는 위엄 있고 훌륭하게 다른 목적으로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작은북은 우리가 여섯 살 적에 치고 놀던, 온갖 색깔의 목재와 양피지와 가는 끈으로 만들어 금방 못 쓰게 되는 작은북과 얼마나 달라 보였던가! 그 작은북은 목에 걸 수 있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래쪽 판은 양가죽으로 만든 줄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세 발 달린 철제 받침 위에 비스듬히 나사로 꽉 죄어져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갖고 놀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북채 역시 가장자리 테두리에 꽂혀 있어서 한번 쳐 보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거기엔 철금(강철제 음판을 조율해 실로폰처럼 배열한 악기)도 있었는데,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그 비슷한 악기를 치면서 우리는 어릴 적에 ‘새 한 마리 날아서 온다’라는 노래를 연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철금은 자물쇠가 달린 아름다운 상자 안에, 세심하게 조율된 금속판들이 이중으로 나란히 가로 막대에 달려 마음대로 치도록 놓여 있다. 그것들을 치기 위해서는 안을 댄 상자 뚜껑에 보관되어 있는 매우 섬세한 금속 망치를 사용해야 했다. 한밤중에 공동묘지에서 벌어지는 해골들의 춤을 연상하게끔 만들어진 듯한 실로폰은 수많은 가로 막대로 이루어진 반음계 실로폰이었다. 그리고 두들겨 박아 만든 커다란 원통형의 큰북과 가죽으로 싼 북채가 있었다. 또한 놋쇠로 만든 팀파니도 있었는데, 베를리오즈는 그런 팀파니를 열여섯 개나 동원하는 관현악을 작곡한 적도 있다. 그 작곡가는 아직 니콜라우스 레버퀸이 취급하는 나사식 팀파니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사식 팀파니는 나사를 돌려 쉽게 음높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갖고 짓궂은 장난을 했던 것을 나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아니, 나만 그랬던 것 같다.) 팀파니 막을 계속 두드려 장난을 쳤는데 그사이 마음씨 좋은 루카가 음을 조율했다. 그러면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이상한 글리산도 주법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심벌즈도 있었는데, 심벌즈를 만들 줄 아는 것은 중국 사람이나 터키 사람뿐이다. 그들만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동을 단련하는 비법을 알기 때문이다. 심벌즈 연주자는 심벌즈를 치고 나서 안쪽 면이 청중에게 보이도록 의기양양하게 높이 쳐든다. 그 밖에도 굉음을 내는 징, 집시들의 탬버린, 한쪽 모서리가 트여 있고 쇠막대로 치면 밝게 울리는 트라이앵글, 현대식 심벌즈, 그리고 속이 오목하게 들어가서 손에 쥐고 딸그락 소리를 낼 수 있는 캐스터네츠가 있었다. 그 모든 장중한 흥겨움 위에 금빛 찬란한 구조물인 에라르 식 페달 하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본다면 말없이 수백 가지의 형태로 아름다운 화음을 예고하는 그 파라다이스의 매력, 즉 소년이었던 우리를 마법처럼 빨아들인 숙부의 악기 창고가 지닌 매력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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