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악
- 음악 취향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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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헤세와 음악




내 세대 청춘의 필독서였던 <데미안>류조차
읽는 둥 마는 둥했던 내가 저 <유리알 유희>를 읽은 것은
<헤르만 헤세의 시와 음악>이라는 책을 읽던 중
헤세의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것만은 읽어야겠다, 아니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서였다
<유리알 유희>는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자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인격체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일대기이고 SF이고 판타지였다
1년여에 걸쳐 읽었지만 독서의 순간순간이 즐거웠고
분명 우리말 번역인데도 마치 서정시를 읽어나가듯
소리내어 낭독하고픈 문장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지닌 풍부한 음악적 재료뿐만 아니라
언어의 리듬, 테마의 구성에서 보이는 음악적 구조,
구체적으로는 대위법적(변증법적) 형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잡문 시대와 카스탈리엔
음악 명인과 크네히트
크네히트와 데시뇨리
야코부스와 크네히트
노형과 크네히트
혼돈과 질서
전통과 혁신
개인과 사회
노인과 청년
스승과 제자
세속과 수도원 등등의 대립 설정, 삶의 양극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과 조화를 지켜가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유리알 유희>를 1년 동안 읽은 후
다시 붙든 <헤르만 헤세의 시와 음악>을 사흘 동안 읽었다



폴커 미켈스? 미헬스?라는 헤세 연구자가
음악에 관한 헤세의 글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골라 엮은 책으로
석연치 않은 번역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알차고 흥미롭다
1부는 헤세가 단편적인 성찰, 시, 소설, 회상록 등을 통해
기록한 음악 체험 및 음악에 대한 사색
2부는 서간, 서평, 평론 등 그의 생애에 걸친
음악 수용의 발걸음을 보여주는 연대기적 자료이다
한평생 클래식이라 지칭되는 서양예술음악의
충실한 애호가로서 심미적으로 고양된 삶을 살았던 헤세
그에게 음악이란 '미적으로 감지된 순수한 현재'였다
그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가장, 기복없이, 열과 성을 다해 사숙했고
젊은날엔 쇼팽을 특히 사랑했으며
베토벤과 슈만 슈베르트 후고 볼프를 꾸준히 좋아했다
반면 그는 바그너(를 둘러싼 시대적 흥분)를 혐오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기회주의적 성공)에 대해
냉소적이었으며 브람스는 별로..였다
콘서트고어였으나 극장, 혹은 극장적 도취를 경계하였으며
에드윈 피셔 피에르 푸르니에 클라라 하스킬
루돌프 제르킨 토마스 만 등과 교류했다
책에 많은 밑줄을 긋고 공감하는 가운데
두 편의 글을 옮겨보았다
1은 1943년 발표된 <유리알 유희>의 음악적 구조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글
2는 헤세와 음악의 관계를 요약적으로 드러내 주는 글


1.
내가 만일 음악가라면 힘들이지 않고 2성의 멜로디를 쓸 것이다. 서로 호응하며 보완하고, 서로 경쟁하며 규제하고,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또한 그 선상의 위치에 있어서도 아주 긴밀하고 생생한 상호관계를, 상호작용을 갖는 2개의 선, 2개의 음렬, 2열의 음표연결로 이루어지는 멜로디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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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이 2성성, 영원히 진행하는 안티테제를, 이 이중의 멜로디를 나의 소재 즉 말로 쓰려면 잘 되지 않는다. 몇 번이고 다시 그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반드시 그것을 이룩해 보려고 아무리 긴장하고 노력해 보아도 도대체 그건 불가능에의 도전이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매우 난폭한 싸움이 된다. 나는 늘 어떤 멜로디와 대립하는 또다른 멜로디가 동시에 눈에 보이는 듯하며 다채로움에는 단순함이, 경쾌함에는 굉장함이 있는 듯한 그런 이중성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며 그와 같은 글과 문장을  쓰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그와 같은 이중성에 의해, 즉 2개의 극 사이를 변전하는 것, 이 세상의 주춧돌 사이를 왕래하는 것에 의해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커다란 기쁨을 가지고 이 세상의 다양한 다채로움을 나타내고 싶고, 마찬가지로 늘 이 다채로움의 뒤에는 단순함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다. 나는 또한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밝음도 어두움도, 죄도 경건함도, 항상 그저 한순간의 대립이고 그것들은 끊임없이 서로 이행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인류 최고의 말이란 이 이중성이 이상한 상징성을 가지고 얘기되는 저 몇 가지 수수께끼에 가득찬 훈계와 비유이고, 거기서는 이 세계의 위대한 대립이 필연임과 동시에 환영이기도 하다는것이 확실히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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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두 양극을 서로 접근시키는 일, 인생의 멜로디의 2성을 기록해 두는 일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 속의 명령에 따라 살며시 이러한 시도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내 인생의 시간이 나의 붓을 강요하는 것은 정말로 이 일인 것이다.
-<탕치객> 1923년


2.
여섯 살인가 일곱 살 경부터 나는 온갖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힘 가운데서 음악이야말로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고 나를 지배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의 세계를, 피난처를,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서 빼앗을 수도, 침략할 수도 없고, 또 내가 그 누구와도 나누어 가지려고 생각지 않는 나만의 천국을 소유했던 것이다.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어떤 악기 연주도 배우지 않았고 또 어른이 되면 음악으로 입신하리라고 생각한 일도 없었지만 이미 이때부터 나는 음악가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다양한 색깔의 여러 측면을 가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하나의 기조음(基調音)이 주어지고 하나의 별로 향해진 인생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좋든 싫든 나의 내면생활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하자면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악보를 만지는 일도 없었고 악기에 손을 대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멜로디는 언제든지 나의 핏속에, 입술 위에 있었고 박자도 리듬도 나의 호흡, 나의 목숨과 함께 있었다.

아무리 내가 구원을, 망각을, 해방을, 다른 방법으로 찾았어도 또 아무리 신을, 인식을, 평화를 열망해도 그것들은 언제나 음악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었다. 굳이 베토벤이나 바하일 필요는 없었다. 애당초 이 세상에 음악이 있다는 것, 사람이 때로 마음 밑바닥까지 리듬에 흔들리고 하모니에 침투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항상 인생의 깊은 위로였던 것이다. 아, 음악이란 얼마나 멋진 것이냐!

자네에게 하나의 멜로디가 떠오른다고 하자. 자네는 그 멜로디를 소리로 내지 않고 마음 속에서 불러본다. 자네의 전존재를 그 멜로디에 완전히 잠겨 본다. 그러면 멜로디는 자네의 모든 힘, 모든 운동과 하나가 되고 그 멜로디가 자네 속에 살아 있는 동안 자네 속에 있는 모든 덧없는 것, 사악한 것, 거친 것, 슬픈 것을 녹여버린다. 이 세계를 함께 울리게 한다. 답답한 것을 가볍게 하고 완고한 것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민요 멜로디라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모니! 맑게 조화하는 음들의 기분 좋은 공명, 예를 들면, 종이 울리는 소리는 자네의 마음을 우미(優美)함과 즐거움으로 만족시킨다. 그리고 다시 음이 하나하나 더하여 가면 그것은 고양되고 그리고 때로는 자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고 기쁜 나머지 떨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다른 감각적 쾌락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인들이 언제나 꿈꾸어 온 순수한 행복 중, 이 우주에 울리는 하모니에 남몰래 귀를 기울이는 것만큼 최고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가장 깊은, 가장 굉장한 꿈은 언제나 순간이, 우주 전체가, 온갖 삶의 총체가, 은밀하고 고유한 하모니가 되어 울려 펴지는 것을 듣는 것에 있다. 아, 어째서 이 세상의 인생은 이처럼 혼란하고 조화를 잃고 거짓에 차 있는 것일까? 어째서 거짓이, 악의가, 시기가, 미움이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작은 노래도 아무리 변변치 않은 음악도 밝게 서로 울리는 소리의 맑음이, 조화가, 정다운 희롱이 이처럼 분명하게 하늘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도.
-음악가 소설 <게르트루트> 중에서, 1909년


이어지는 독서의 향방은..
헤세와 동시대 문학인으로
헤세만큼 음악을 좋아했고 또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작품에 구현한 바 있는
토마스 만에 도전해 보겠다
책이라면 이미 오래 전부터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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