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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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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4시간 파티 피플]_2002.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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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윈터바텀과 스티브 쿠간의 BBC 여행영화 [트립] 시리즈를 보면서
그들이 함께한 [24시간 파티 피플]이라는 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나서 옛 감상문을 올려본다
지금 보니 빔 벤더스 작품과 묶어서 쓴 글이다
[비엘 파시에르트- 쾰른에의 송가]와 [24시간 파티 피플]
2002.12.9
이 두 작품은 각각 밴드, 혹은 밴드들을 다루고 있는
음악영화이면서 무엇보다도 '음악사'의 영화화이다.
이것이 영미팝음악의 역사라든지 비틀즈에서 너바나까지, 류의
각국 교육방송용 음악다큐와 차별되는 점은
명인들의 손으로 빚어진 극영화인 만큼 기교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여기에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해석'이란 다름 아닌 '예술의 사회사'이다.
두 작품엔 제재로 다루고 있는 밴드에 대한 친밀함과 존중,
그들 음악에 대한 매혹이 살아있는가 하면,
당대의 음악대중과 밴드가 맺은 상호작용의 고리, 그리고 그 고리들의
연쇄이자 언저리인 '사회적 흐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실은 그것이 화자나 감독 자신의 개인사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음악영화가 대개 성장영화인 까닭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빔 벤더스의 [비엘 파시에르트-쾰른에의 송가]는
독일 내 중견밴드 BAP의 일대기로서
밴드 보컬의 회고와 공연클립들과 무대 뒤의 일상을
그들이 활동한 대략 7,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독일 사회의 변화와 함께 엮어 나간 밴드 역사이다.
BAP 역시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를 숭배하며 성장했다.
영화 속엔 롤링스톤즈가 독일에 와서 공연할 적 인터뷰 장면을
슬쩍 보여주는데 이때, 독일식으로 마익 예거라고 발음되는^^
믹 재거는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독일 젊은이들은 어떻던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뻔한 질문에 그는 한결같은 경박함으로,
그러나 잠시 텀을 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이전 시대보다 덜 불행해지기를 바란다.
그 시기 유럽 청년문화의 지형도라든가
독일 젊은이들의 기분에 대해 내가 알 게 뭔가..
하지만 믹 재거의 그 말 한 마디는 큰 울림이 있다.
영화는 거의 BAP의 공연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쾰슈라는 쾰른 방언(이런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으로 가사를 썼다는
이 밴드의 음악을 내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음악적 기조는 밥 딜런이나 닐 영에 이어져 있는 것 같았고
80년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이스트리트밴드와 합주하던
시절(이 곧 그의 최고절정기)의 음악 세계하고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BAP의 마스코트라 할 법한 화장대 크기의 이동식 바가
시각적으로 기억에 남는데, 인형과 부적과 장난감과 각종 액세서리들로
덕지덕지 장식된 일종의 제단으로서, 밴드원들은 공연 전후로 늘 그 앞에서
위스키를 한 잔 하며 긴장을 풀어준다든가 휴식을 취하곤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싼타에게 받고 싶은 물건이었다.
이 영화는 형식상 빔 벤더스의 지난 음악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작품이 벤더스보다 오히려 벤더스와의 오랜 파트너인
라이 쿠더의 자의식이 앞선, 인류학적 음악탐사 리포트 같았던 반면,
[비엘..]은 보다 더 벤더스적이며 또 자국내 밴드를 다룬 만큼
보다 진지하며, 예술과 사회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
마이클 윈터버텀의 [24시간 파티 피플]의 화자는
70년대 후반, 불과 40명 남짓 모였던 섹스피스톨즈의 역사적인 공연장에
자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음악편력의 기점으로 삼는
티비 앵커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니 윌슨이다.
영화는 바로 이, 멀쩡한 남자인 동시에 정신 나간 남자 토니 윌슨의
까불거리는 재담에 의해 진행되는 영국 맨체스터 씬의 록음악사이다.
섹스 피스톨즈-조이 디비전-뉴오더를 음악사의 한 라인으로 잡고
그 밑그림으로서 팩토리 레코드라는 레이블의 흥망성쇠, 그리고
댄스클럽 하시엔다의 탄생을 교직시켜 나간 이 작품은
화자인 토니 윌슨의 캐릭터만큼이나 경쾌하면서 시니컬하면서
지적이면서, 또한 쾌락적인 음악영화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보컬 이언 커티스의 돌연한 자살로 충격을 준 바 있는
진정으로 아방가르드적이었던 밴드 조이 디비전에 대한,
그리고 도시 맨체스터에 대한 열정어린 헌사이기도 하다.
맨체스터는 학교때 지리시간에 공업도시명으로 배웠으며
지금은 무엇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도시이다.
그리고 이제, 이곳은 세계 음악사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훗날 레이브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질 뉴웨이브 음악의 씨앗을 틔운,
그러그러한 밴드들의 도시였던 것이다..
상상하건대 영국의 어느 도시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스크린에 비친 이 도시는 유난히 황량하고 어두운 잿빛으로 다가왔다.
석양녘 2호선순환선 안에서 바라본 성수동이나 구로공단 일대 같은 색감에,
낡고 부패되고 화석화된, 가망없는 질감의 도시.
상영 시간 내내 매혹되었으며 지금도 공연중 이언 커티스의,
뇌성마비환자처럼 뒤틀리던 기이한 동작과 음산한 저음,
규칙적이면서 무미건조하며 반복적인 전자사운드가 귓가에 맴돈다.
이하 기나긴 덧말.
위 두 작품은 지난 주 나흘 간 메가박스에서 열린
서울유럽영화제에서 기적적으로 챙겨 본 작품들이다.
메가박스는 원래 예매하지 않고 주말관람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한두 시간 일찍 달려갔건만 피 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에이, 유럽영화제니까 좀 널널하겠지, 하고
극장으로 향하면서도.. 내심 불안하긴 했었다.
일요일 오후 3시 30분 빔 벤더스의 영화를 겨냥한 그날,
시댁에 김장김치 가지러 갔다가 둘러대고 나만 빠져나와 삼성동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3시 정각. 인파를 헤치고 영화관에 닿은 것이 3시 10분.
숨이 턱에 차서 티켓 창구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매진.
허탈함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장 남았네요, 하다가 곧이어,
아니 매진입니다, 이럴 건 또 뭐냐 열받게시리.
그런데.. 바로 그때 들려 온, 엇 선생님! 하는 귀에 익은 문장!
면목에 오기 전 무려 8년간 강동지역 중학교에 근무한 결과
도처에서 옛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롯데리아 카운터에서, 이마트나 테크노마트 알바생으로,
백화점 의류매장코너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피자배달부로 등등..
아직 나이들이 어려 고정된 직장인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주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는 학생들을
생활공간에서 불시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옛 학생들을 생활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승민아빠는,
지역사회의 근로자들을 키워내고 있으니 당신의 임무가 막중하다..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하여튼 모른 척하고 지나가도 그만일 것을 가끔 아는 척해 주는
학생들이 있고 그럴 때마다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인데..
지역구인 강동쪽이 아닌 강남땅에서 녀석을 보게 될 줄이야..
98년 당시 중3이었던 장철용이라는 학생이
이날 메가박스 유럽영화제 티켓 창구에 스탭으로 서 있을 줄이야..
음, 그 다음부턴 미담의 연속이라 거품 물고 자랑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선생님, 잠깐 기다리세요, 하더니 이 녀석, 무슨 묘수를 썼는지
매진이라던 영화 티켓을 하나 구해오지 않았는가.
나는 이 드라마의 반전의 반전에 무릎이 꺾일 뻔했고
거의 눈물을 흘리다시피하며 고맙다 얘야, 고맙다, 하며
한사코 영화값을 안 받겠다는 그 학생에게 6천원을 쥐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상영관을 찾아들어갔고 목이 너무 말라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려는데 웬걸, 기계고장인지 돈을 먹지 않는 것이다.
뭐가 잘못 됐나, 하며 신경질적으로 지폐를 쑤셔넣고 있는 중인데
또다시 어디선가 귀에 익은 선생니임~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철용이가 차가운 네스티를 건네주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요 이쁜 것이,
즐겁게 보시구요, 다른 작품 보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표 구해놓을게요, 아, 이러는 것이 아니냐..
이리하여 나는 다음 날인 월요일 밤 타임에 잡혀있던,
그리도 보고 싶었던 [24시간 파티 피플]까지 안전하게
감상을 종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좌석에서.
아무리 영화가 영화라지만 일요일에 이어 격무 끝인 월요일 저녁시간의
영화감상이 무리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난 철용이가 정말 티켓을 준비해 놓았을 것 같아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했더니 철용이는 막 퇴근한 직후였고 곁에 있던 친구가
어제 왔던 나를 기억하면서 티켓을 꺼내주었다. 4천원짜리 할인티켓이었다.
이번마저도 그 돈을 지불하기란 부자연스러웠다.
대신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마침 눈 앞에 보이는 제과점에서
생크림케익을 한 판 사다가, 친구한테 맡겨놓고 왔다.
친구가 가르쳐 준 철용이 휴대폰으로는 굳이 전화하지 않았다.
이틀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영화감상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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