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김주향 |
 |
| 제 목 |
[살인의 추억]_2003. 4.28 |
|
[살인의 추억]_2003. 4.28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나는 요 또래 요 그룹의 영화인들이 장르 숙련을 통해 특수한 사회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지구를 지켜라]에서 지난 시대의 공기를 적극적으로 읽었던 사람에게 [살인의 추억]은 좀더 완성된 형태의 사회적 텍스트로 다가온다. 이것은 일견 촌스럽고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복수]와 [지구]로부터 [살인]에까지 축적되어 온 이 느낌을 부정한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요컨대 [살인의 추억]은 범죄 스릴러로 그려낸 한 편의 사회심리적 풍경화였다. 그 풍경이라는 것이 저 십수 년 전 경기도 농촌 지역에서 실제 일어났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미스테리한 시공간인지, 아니면 화면상으로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부분을 규정하고 지배하고 있는 그 시대의 다른 맥락들인지, 아니면 그때 그곳을 바라보는 오늘 이쪽 마음의 풍경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그것들을 넓게 감싸안는 풍성한 영화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 작품에선 장르물 안에 시대의 공기를 밀어넣는 테크닉이 이전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욱 우아해지고 있었다. 장르물을 지향하되 장르 관습을 조심스럽게 거부하는 듯한 모순된 움직임 속에서 80년대를 기억하는, 우아하고 시적이고 비극적인 방식. 참으로 외곽에서 사고하는 후일담. 이를테면 90년대 이후 소설작품들이 보여주지 못한 모던한 후일담.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영화 첫 장면 때처럼 그, 광활한 농촌 벌판 대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잊혀진 하수구를 들여다 볼 때.. 나도 똑같이 그 하수구를 들여다 보았던 것 같다. 버려진 사생아랄지 피묻은 시체 모가지라도 와락 굴러나올 것 같은 공포 그 너머로, 비어있는, 아직 마르지 않은, 축축하고 진득진득하고 스산한 80년대가 거기 있지 않은가.
[살인의 추억]을 보며, 문학이 하지 못한 것을 영화예술이 해내는구나 하는 감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 그룹의 영화인들을 비로소 예술가라 부르고 싶어졌다. [살인의 추억]은 내용이나 설정 면에서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과 유사해 보였으며, 심미적으로는 태평스러움 뒤에 숨은 부조리, 부조리와의 대결, 불가항력, 백일몽 터치 등에서 데이빗 린치의 초기작 같은 느낌도 있었다. 또 사회물로 한정했을 때 가령 이창동 감독의 80년대 역사화 방식과 비교해 보자면, 만든 주체가 영화 매체를 좀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갖고 놀 줄 아는 그룹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한 수 위로 보게 된다.
끝으로 송강호이다. [공동경비구역JSA]와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다시 한번 이 배우에게 확고하게 승복한다. 화면에 충만한 농촌의 자연으로부터 낭만을 탈색시키고 논둑길에 운집한 관계자 및 기자단을 완벽한 엑스트라로, 완벽한 배음으로 후퇴시킨 도입부의 어느 씬에서 그를 보라. 억센 풀숲을 헤쳐 나가는 지방 수사관의 안무와 그 안무 따라 수평이동하는 화면의 기묘하고 황량한 서정을 보라. 산비탈에 번개같이 몸을 날리는 그의 액션을 보라. 추격 끝에 도망자를 색출해 내는 매의 눈을 보라. 인간 송강호, 현장의 중심. 그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필살의 아포리즘은 근래 우리 영화를 안이하게 떡칠해 온 조작된 슬랭 전선을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제왕의 자리를 획득한다. 시퀀스 단위로 인상적인 비주얼이 많았지만 송강호가 반쯤 드러누워 애인이 놓아준 링거를 맞고 있던 강기슭에서의 망중한, 베스트로 꼽는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