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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박찬욱씨의 [데드맨] 감상기_1998. 5.1

박찬욱씨의 [데드맨] 감상기_1998. 5.1    

키노 5월호 '도시에'란에 실린
박찬욱씨의 [데드맨] 감상기는,
언제나처럼 간결하고 속도감있는 문장 속에
독자적인 감식안과 위트가 살아있는
총명한 글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영화에 열중한 자의 행복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데드맨]을 가볍게 멸시해 버린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를,
같은 방식으로 경쾌하게 눌러주면서 시작한 이 글은
[데드맨] 특유의 시적 호흡법을 체화한 듯한 흐름으로
차근차근 영화의 비의를 캐어들어갔습니다.
아, 그는 어찌나 맛있게 영화를 보는지..
십여 명의 스타 단역들에게 부여된
그 짧은 순간을 통해
그들 각자의 인생의 한 단면을 눈치챈다든가,
영화에 나타난 유머의 맥락을 짚어낸다든가 하며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을 아는 자만의
특권적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의 여정과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들을
부드럽게 연결짓는 수완을 뽐내기도 하며
대도시 아닌 시골로 가는 길,
자라나기보다는 죽으러 가는 길,
시민사회로의 편입이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의 이탈,
여행 중에 지혜와 교양을 얻거나
대지를 개척하기는 커녕
무기력 속에 종말을 맞는 인물의
유례없는 수동성을 분석하는 가운데
반서부극, 반성장영화, 반로드무비로서
미국의 개척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는 [데드맨]의
영화적 파워를 설명해 내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분량의 글을 통하여
'죽은 자와 아무도 아닌 자'가 느릿느릿 서진하던 길,
'사막이나 평원이 아닌 숲 속'의
그 '싱싱한 나뭇잎이 뿜어내는 아로마'를
다시금 맡으며 '삼림욕의 쾌감'을 되새김질할 수 있었으며
'무표정 속에 수많은 감정을 표현해 내'던 조니 뎁과
'단순한 리프의 반복'으로 '영혼을 마취시키던'
한 대의 기타 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되어 이루어내던
[데드맨]의 시정(詩情)으로
기분좋게 회귀할 수 있었습니다.

'나'가 살아있되 불편한 자의식이 느껴지지 않으며
영화를 해석하되 제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영화를 숨쉬게 하는 글,
풍부한 재능으로 영화에 합당한 광휘를 더하는 글.
저는 박찬욱씨의 글을 읽으면
영화의 바다 위에서
유쾌하게 서핑을 즐기는 기분이 됩니다.
육중한 닻을 내릴 필요도 없고
요란하게 그물을 쳐댈 필요도 없습니다.
해면의 리듬을 타고
두 뺨에 한껏 바람을 느끼다 보면
닻이나 그물 따위 없이도 자연스럽게
저 깊은 바다 속 희한한 사연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한낮의 태양이 정수리에 꽂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데드맨]을 가장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대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행은 제 맘대로 바꾸었습니다.

'생명의 숨결로 가득찬 처녀림을
죽은 자와 아무도 아닌 자가 친구가 되어 여행한다.
이 숲은 도시와 바다 사이의 중간 지대로 설정된다.
그것은 낮과 밤 사이에 끼인 노을과도 같다.
추적자 트윌의 말마따나 그 과도기 없이
램프가 꺼지듯 낮에서 바로 밤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데드맨]은 사실상 이 노을 단계를 지나가는 윌리엄의
통과의례를 묘사한 영화이다.
두 부족의 혼혈이란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엘크의 무리 속에서 자랐고
도시로 갔다가 거기서도 도망나온 노바디처럼 윌리엄은
두 개의 세계 사이 중간 지대를 가로지르는 여행자이다.
각각 노바디는 백마, 윌슨은 흑마,
윌리엄은 둘이 뒤섞인 얼룩무늬말을 타고 지나가는
이 풍경(특히 [현기증]에도 나오는 세콰이어 삼림 장면)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건 노을이 아름다운 이치와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이는 죽음으로 가는 통과의례지,
入社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出社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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