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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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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녜스 바르다의 85년작 [방랑자] -200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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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았다
군데군데 시적인 순간들이 있고
좋은 영화..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조롭고 어쩐지 기운이 빠지는 영화였다
보고 나서 찾아본 옛글
[방랑자] -2001.4.23-
아녜스 바르다의 85년 작품인 [방랑자]는
스무 살이 안 돼 보이는 한 소녀가 집도 절도 없이 방랑하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상에서 객사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이 소녀가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을 맨 앞에 보여주고 나서
플래시백하여 그녀의 방랑길을 쫓아간다.
여기에 그녀를 스쳐간 이러저러한 사람들, 이를테면
농부, 술집 주인, 히피, 아낙네, 여교수, 트럭 운전수 등등이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형식이 보태진다.
소녀에겐 집이 없다. 집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녀가 가정과 가족을 버렸다는 뜻이다.
소녀는 땡전 한 푼이 없다. 그래서 늘 남의 것을 슬쩍한다.
늘 돈이 궁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일하기를 드럽게 싫어한다.
소녀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녀의 대인관계는 예외없이, 형편없이 적대적이다.
소녀는 깨끗하지 않다. 산발한 머리와 손톱의 까만 때를 보라.
사람들은 며칠씩 씻지 않은 그녀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온갖 것들의 결여태로서의 소녀는
완전한 자유인이었음과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존재였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위에서 나열한 항목들의 결여가
소녀에게 선천적이고 운명적이었다기보다는
소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가정에 소속되어 있음, 노동하여 돈 벌기, 타인에 대한 예절, 청결함..
모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의 몸뚱아리 자체는,
정상인에게 요구되는 저같은 당연한 가치들을
침묵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전복하고 있는,
위험한 폭탄물처럼 보였다.
마리화나를 피워대며 아무 데서나 야영하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며 히치하이크로 떠돌아 다니는
날카로운 앞발을 가진 이 야생의 들짐승!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자유와 고독의 대가는 결국 소녀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참혹했다. 너무나 참혹했다.
죽기 직전 소녀는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강해 보이던 소녀는 통제불능으로 황폐해져 있었다.
그녀는 극단의 궁핍함에 처하여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았고
자신의 어느 것도 타인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영화가 무서웠다.
프랑스 남부의 농촌이 전원적으로, 또는 목가적으로 그려지기는커녕
어딘지 일그러진 구도에다 비스듬한 각도로 화면에 잡혀
불길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다가..
이윽고 동사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영화를 지배하는 비극적인 세계관이 너무나 무서웠다.
일평생 기존 가치들에 맞서 열심히 싸워 온 사람이(감독이)
노년에 이르러 도달한 결론이 여기 있다, 고
말하는 것 같아 더 무서웠다..
선택으로서의 자유와 고독의 끝은
어느 누구의 돌봄도 없이 무관심 속에 버려져
참혹하게 죽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비극적 종말은 정녕 신화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화의 이치를 종종 거역하며 불온한 꿈꾸기를 즐겨왔던 인간 족속은
모나가 통과해 온 자유와 고독에 매혹된다.
약삭빠른 셈 따위를 불허하며 무모하게 따라가 버려도 좋을 것 같은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매혹이 거기에 있다.
그녀의 전부를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스쳐간 이러저러한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녀의 몇 조각을 알게 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녀의 여로는, 그녀가 서 있던 해방의 길만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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