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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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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박쥐] (20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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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진정한 데뷔작은 [복수는 나의 것]이었다.
이 작품은 준비단계에서부터 개봉직후까지 나를 온전히 사로잡은 바 있다.
차기작인 [올드보이]때부터 그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지나간 감상문에 따르면 이때부터 나의 열광도 식어갔던 듯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피로를 느꼈고..
안 본 [사이보그..]를 건너뛴다면
이번 [박쥐]에서 나는 피로의 절정에 도달했다.
나는 이 영화가 이다지도 공허할 줄은 몰랐다.
[박쥐]에서 시각적으로 먼저 인지되는 것은
미술의 출중함과 독창성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이 영화는 무슨 19세기의
장식적 예술사조쯤을 연상시킬 만큼 완성도가 높은,
한복집 내부의 디테일로 표현된 생활지옥도,
이름하여 저승인테리어를 화면에 유려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세팅은 얼핏 대단히 한국적인 듯하나
지켜볼수록 이국적인 것이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를테면 삼사십여년 전 미국교민사회의 한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일종의 한국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국이되 한국을 떠나 존재하는 한국 같은,
딱 60년대와 70년대 정도에서 시간이 정지하고
역사에서 떨어져 나간 듯한 한국 아닌 한국의 느낌이었다고 할까.
내게 이 영화가 공허했던 까닭 중 하나는 이 영화가
한국적 (기원을 가진) 소재를 착취하면서
정작 한국적 컨텍스트가 증발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창작주체의 의도 혹은 비의도와 반드시 관련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서도..
어쨌든 간에 내 경우, 한국사회를 드러내놓고 소재화하는 영화가 재미없는 만큼
한국영화이면서 한국적 컨텍스트가 지워진 영화 또한 긴장감이 없다.
나는 [박쥐]가 다소간 오리엔탈리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쥐]가 공허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테마 선택과 관련된다.
얼핏 이 영화는 종교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죄와 죄의식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잘 와 닿질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 테마가 맘에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테마에 동경과 낭만주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아니 이러한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난 이 테마가
대단히 기독교적이고 서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문화는 체면의 문화이지 죄의식의 문화가 아니다.
테마 선택에 있어 나는 [박쥐]가 서구영화인들에게 아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테마를 폭력취미와 결합시킨 선택은 특히나 고도의 아첨으로 느껴진다.
누구랑 비교하는 거 나쁜 버릇이고 미안한 일이지만
지아장커 같은 중국 감독에 비해 박찬욱 감독이
이렇게 어리디 어리게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것은 내가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 지난 감상문들을 보건대 내가 변한 거.. 맞는 것 같다..
내가 이 영화에 내심 기대한 것이라면 뱀파이어로맨스라는 요소일 것이다.
간지러운 틴에이저 뱀파이어로맨스였던
[트왈라이트]의 어덜트 판 정도를 기대했던 걸까..
그 지경으로 표현을 낭비하고도 아니 왜! 더 파괴적일 수 없었는지?
더 처절하고 격정적일 수는 없었는지?
송강호와 김옥빈 듀오는 깜찍하고 팬시하긴 했다.
그러나 섹시하지는 않았고 하물며 그들 관계는 낭만적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섹시하기로 돼 있는 장면에서 혹은, 낭만적이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
저게 다가 아닐 거라는 다른 꿍꿍이, 즉 배후지능이 먼저 느껴지니
대체 그 장면들이 마음껏 섹시하거나 낭만적일 수가 있는가.
늘 다른 아이디어들이 끼어들거나 홰까닥 방향전환해 버릴 것만 같은 예감,
전반부 내내 계속된 이 산란함, 이 어정쩡함은 곧
아이디어 통제가 안 되고 있거나 일부러 안하고 있다는 얘긴데..
비관습적 영화의 매력이라고 변호해 주기보다
흐름과 연결에 실패한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체로 한때는 매력적이라 느꼈을 법한 부분부분을 귀엽게 봐 주고
같이 놀아줄 수 없는 것은 '지금 나'의 한계라 해도 유감이 없다.
한편 이 영화에서의 송강호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서 사제복 속의 바디라인이 살아난들,
유리조각을 입안에 쑤셔넣고 살점을 뜯어먹는 피비린내나는 키스를 해대건만
[밀양]의 송강호만큼도 섹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욕망과 욕망의 억제 간의 변증법적 고뇌,
예의 죄의식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성의있게 다루지 못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음, 실은 이거 다 하나마나한 말들이다..
창작주체가 자신은 애초부터 단일한 테마에 복무하거나
심오해질 의향이 없었다고 대답한다면 일거에 허무해지는 얘기들 아닌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어느덧 그런 패턴의 권위적인 알리바이마저도 내장하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온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가 떠올랐다.
개봉당시엔 영화를 둘러싼 센세이셔널리즘에 가려, 또 내가 어려
그 작품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쥐]의 명장면은 낚시보트 위에서의 살인장면이었다.
수평의 보트 위에 세 사람이 위태롭게 밸런스를 잡고 있는 데서부터
살해와 익사, 거기서 곧장 이어지는 흡혈까지의.. 숨막히는 장면이었다.
이거 하나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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