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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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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데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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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를 보던 중 떠오른 [데미지]를 DVD로 사다 보았다.
그리고 영화의 데미지가 너무 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본 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벌거벗겨진 마음의 터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원작이 있었던 모양이고 감독이 루이 말이고..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충격적 소재와 드라이한 터치, 폐부를 찌르는 대사와 정치적 긴장감에서
오히려 각본을 쓴 데이빗 헤어의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데미지]를 보며 85년에 헤어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웨더비]가 떠올랐는데 4년 전에 쓴 [웨더비] 감상문을 찾아보니
아니나다를까 이 영화를 보면서는 [데미지]가 생각났다고 적혀있다.
[데미지]는 인생의 한 국면에서 통제불능의 욕망과 격정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강박관념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의 서스펜스는 중년의 성공한 정치가인 주인공이
아들의 약혼녀와 정사를 나누게 된다는 자극적인 설정으로부터 관객을 조여온다.
단 두 차례의 시선의 얽힘과 전희없는 돌발섹스로 포문을 여는
이들의 정사는 곧장 위태로운 밀회들로 이어지는데
흥미롭게도 주인공의 강박은 상대가 다름 아닌 ‘아들’의 연인이라는 사실에서
촉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남자를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두 남녀의 정사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묘한 쓰리섬의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루이 말 감독의 안정적이고 짜임새있는 연출,
피터 비지우의 아름답고 프로페셔널한 촬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영묘하고도 경제적인 음악..
[데미지]는 90년대 초반 기점에서 유럽 최고의 영화 스페셜리스트들이
이루어낸 고품격 앙상블을 지켜보는 영광을 누리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제레미 아이언스의 영화이다.
‘인식경계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끌림에,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욕망에 눈먼
한 남자의 파멸의 연대기를 무서운 집중력으로 연기해 낸,
배우에 의한, 배우를 위한, 배우의 영화, 이것이 [데미지]이다.
그가 찍은 많은 영화들이 있겠지만 나는 80년대에 나온 [미션]의 수도사 이미지와
이 [데미지], 혹은 [데미지]와 쌍생아인 [프랑스 중위의 연인]의 이미지,
이 2종의 이미지가 이룩하는 시너지 효과야말로
이 배우의 섹슈얼리티를 예술적으로 완성했다고 보며
카톨릭, 신부, 애욕, 타락, 격정, 죄의식 등의 온갖 낭만적인 키워드로
세상을 미혹했던 [박쥐]를 보며 왜 내가 제레미 아이언스와,
그가 출연한 저 영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지가 여기서 설명되는 것이다.
[데미지]는 충격적 정사와 그것이 초래한 비극적 결말과 여파를
담담하게 다루고 있는데 개봉당시의 야단법석과 별개로 지금 보니
이런 스캔들성 내용을 결코 스캔들화하지 않는 영화언어가 놀랍다.
이런 접근은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까다로운 법이다.
영화의 언어는 육체적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런 소재의 영화가
스캔들이 돼 버리는 것은 영화언어의 그러한 태생적 함정 때문일 것이다.
[데미지]가 진짜 센세이셔널한 것은 야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영화여서였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이라는 것이
결국 야하다는 것과 동일한 얘기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대사들이 그러하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주인공 스티븐이 아내와 가정을 떠나겠다고 말하자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안나는 묻는다.
부인을 떠나서 뭘 얻겠다는 거죠?
당신.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얻는 거예요.
한편 영화의 대미에서 세월이 지나 주인공은 추억하며 말한다,
그토록 집착했던 여자를 훗날 우연히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을 때
그녀는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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