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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김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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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복수는 나의 것] (200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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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많이 보고 영화 공부 많이 하고
영화평도 써 온 영화인의 영화 만들기,
이것을 지켜보는 일은 대체로 고된 일이었다.
만들기는 타고난 재능이며 스타일은 본능일진대
(이같은 천재론, 특권론의 관점을 뿌리깊이 신봉한다)
개념과 말이 패기를 눌러버리고 계획과 구상이 표현을 압도하기 일쑤인
그들의 영화에서, 으레 맥이 탁 풀리곤 했었다.
영화가 막나가도 위선적이고
영화가 절제되어 있으면 그 나름대로 역겨웠다.
영화가 장난질이나 치고 있으면 장난하는 척하고 자빠졌네, 였고
영화가 무슨 메시지씩이나 전달하려는 제스처라도 취할라치면
흠집내기에 혈안이었다.
성질 못 된 관객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며..
이렇듯 배배 꼬인 애증의 관람학 안에서.. 그나마 박찬욱 감독은
매번 증오보다 애정으로 기우는 영화인이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에 이어.. 느닷없이 진지하며 건전한,
그러나 조율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진 [공동경비구역]을 돌아
이제 [복수는 나의 것]에 이르러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오랜 세월 꿈꾸었던 영화, 자신이 사랑해 왔던 영화를
비로소 자기 영화를 통해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두에서 늘어놓은 까다로운 감상자의 우려를 맞받아칠 만큼
이 작품, 아름답게 잘 뽑혀나왔다..
보면서.. 그냥 좋아해 버리기로 마음 먹은 영화, 몇 년만인가.
장기밀매조직원들, 해고된 청각장애인, 이상한 혁명주의자,
유괴당한 소녀의 아버지.. 이렇듯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들부터가..
등골을 예리하게 훑어내린다. 분명 저곳은 서울인데..
이 도시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과 관리 당하고 있는 자들,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자들과 보호받고 있는 자들,
소위 안전지대에 속해 있는 자들, 몽땅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 많은 시민들과 그 많은 관리들과 그 많은 경찰들과 그 많은 정치가들과
그 많은 연예인들과 그 많은 비즈니스맨들은 땅속으로 꺼져버렸는지.
익숙한 존재들이 실종되고.. 대도시 관리망에서 교묘히
배제되어 있던 군상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닌다.
새삼스럽게 서울은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 아니, 이 영화에 와서야
서울이라는 거대한 벽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꽤 많은 잔혹한 영화를 통해 이미 관습화되어 온,
외과수술기기들의 등장과 변용, 이 기기들과 신체가
접속하면서 파생되는 풍부하고 심술궂은 이미지들,
여기에 제철제강 이미지, 중장비 이미지, 깔끔떠는 전자 아닌,
상대적으로 접속 부위가 거칠고 자극적이며 프롤레타리아적인
전기 이미지들이 추가되고 있으며
금호동 산동네, 장기밀매집단의 아지트,
매장과 익사와 복수의 무대로 설정된 강가 등등 유례없이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영화톤에 부합하는 절묘한 로케이션 하며..
윙윙거리는 기계소음, 한 뼘의 개인 영역을 허락치 않는 폭력적 생활소음,
이에 대비되어 더욱 강한 효력을 발생시키는 주인공의 침묵까지..
두루 아우르는 청각적 심상의 배치와 조율력 또한 훌륭했다.
그렇다, 영화가 흡족했다.
아주 아주 흡족했다는 소리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칭찬거리밖에 안 떠오르는 마당에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갸륵했으니,
이렇듯 하드코어한 소재들로 이룩된 참혹한 비극의 모자이크에
이 영화는 심장을 불어넣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송강호.. 딸을 껴안으려고 활처럼 부드럽게 굽힌 아비의 등, 아비의 꺾인 무릎..
아아, 아비의 울음, 아비의 시퍼런 슬픔, 아비의 복수..
두 차례의 부검 장면에서 그는 한번은 오열하고 한번은 하품한다.
복수자의 신경 채널은 그토록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것이다.
신하균.. 정녕 독극물에 비벼 빨았지 싶은 불온한 머리카락..
누이를 살리기 위해 쓸려간 그의 내장..
누이의 죽음에 나머지 속내마저 뒤엎어 버린 그의, 괴물같은 울부짖음..
처음부터 엿같았고 더 이상 엿같을 수 없이 꼬여버린 인생의 막바지에
그의 의해 저질러지는 장기밀매단의 살벌한 푸줏간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깨는 결말이 오는데..
이건.. 뭐야.. 비장미 끝에 난데없는 웬 골계란 말인가..
그 황당무계함에 어처구니없어하다가..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웃는다.
잔혹에 심장을, 싸늘함에 희미한 온기를,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미원같은 웃음을 버무려 넣는 그,
어딘지 낯익은 마무리 터치야말로 이 작품에 대한 풍문들을,
그것이 진실인 동시에 풍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일축해 버리는,
개운한, 혹은 어떤 이에겐 개운치 않을 수 있는, 그래서 오묘한 마침표 아닌가.
그러니까.. 복수의 모티브에 가려진 미묘한 상위코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코드를 타고 도도하게 흘러온 코엔적인, 코엔스러운 유머 감각.
비로소 이 작품이, 만든 이와 나 사이에
짜고치는 고스돕이었다는 생각이 피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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