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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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카메론을 위한 노래_1998(타이타닉이후)
  카메론을 위한 노래   - 1998. 2. 26 -    


  [타이타닉].. 역시 좋았다. 예상대로..

  하지만 단위 영화의 감흥을  평면적으로 늘어놓고 봤을 때 이
영화를 카메론의 이전 영화들에 비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
니었다.. SF의 틀  속에 러브스토리가 들어가야 제 맛인데 러브
스토리의 틀  속에 SFX가 들어가  있으니 긴장이  떨어지는 것
같고.. 브래드 피델의 음악도 없고..  

  청순한 두 남녀가 물난리를  피해 죽을 힘을 다하여 선상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에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며 강하게 명멸하던 빛
만은 지독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나는 그저 감독  제임스 카메론에 대하여 몇  마디 하려고 한
다. 선체의 절반이 서서히 가라앉고 나머지 절반이 공중으로  치
솟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침몰하는 순간까지.. 아비규환의 현장을
자주 부감으로  촬영한 화면들에서, 나는 미친  신(神)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노한 신이  아니라 미친 신이었다. 눈 하
나 깜짝하지 않고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내려다 보고 있는 미
친 신..  이것이 카메론이다. 자연인  제임스 카메론과  구별되는
영화인 제임스 카메론의 본색.

  
  저번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카메론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
었다. 맨날 잡지 쪼가리에서나 보던 작업복 차림은 온데간데  없
고 나비 넥타이에 말쑥하게 정장을 한 모습이었다. 물론  모양새
와는 달리 이  사람, 정신 나간 듯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서도..

  생전에 이런 주류적인 수상 행사나 영화제에서 카메론의 얼굴
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의 명
망은 영화대중, 그 가운데서도  영화대중의 핵을 이루는 소년층,
청년층의 사랑에 힘입은 것이었지 영화를 재단하는 위치에 있는
엘리트집단의 다수인증에 의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하긴  그들
의 인증이 대체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모른다. 때때로  그들의
인증이 필요 이상으로 나를  억압하는 까닭과 곡절은 더더욱 모
른다..

  소년이니 청년이니 노년이니 하는 구분은 또 뭔가. 밥그릇  수
로 측정되는 연령 개념일 뿐인가.  그럴 리 없다. 카메론의 영화
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흔 살을 먹었어도 소년이며 청
년인 것이다. 오, 그의 영화들이 어김없이 선사하곤 했던 완벽한
서스펜스, 중학생처럼  쉽고 단순하고 천진한  휴머니티, 기술적
탐구의 반짝이는 결정들..
  
  3등석의 영웅 카메론은 이제 1등석의 대열에 진입하여 강고하
기 짝이 없는 그 권위의 세계를 보란 듯이 제패하고 있다. 무엇
보다도 그는 자기다운 영화를 가지고서 할리우드를 평정하고 전
세계 영화대중을 평정하고 드디어 그 잘난 영화엘리트집단을 평
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자기
전문 영화와 영화엘리트집단의  높은 평점을 마지못해 얻어내는
심각한 영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필버그와의 차이가 아닌
가, 그런 생각도 든다.

  시상식에서의 로맨틱한  순간을 보셨는지. 감독상이던가  제작
상이던가, 미셸 파이퍼가 나와서 개봉을 하였다. 앞에서 쭉 상을
휩쓸어 온 [타이타닉]이  또다시 호명되고.. 카메론이 자기  사단
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단상에 올라온다. 그런데 뒷전으로  물
러나려는 파이퍼를 카메론이  붙잡는다. 그리고선 이 여신의  손
에 입을 맞춘다.  파이퍼는 역력히 당황해 하는 눈빛이었고..  내
가 또 공상을 굴려 소설 쓰고 있나, 어쨌거나..  각본에 없었음이
분명한 이 작은  사건은 내게, 3등석 시민의 1등석 제패를  상징
하는 대단히 극적인 사건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카메론이 쌓아온 영화인으로서의 이력과 작업  스타일,
그의 영화세계, 그가  자본, 또는 시스템과 맺어온 관계,  영화대
중들과의 친밀감 형성과정,  오늘날 그의 영화가 미치는  전지구
적 영향력..  이러한 것들을 두루 엮어  생각할 때 우리는  가끔,
이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꽤 흥미로운 질문과 동시에 영
화란 무엇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칼 뵘  같은 지휘자 아래서 사숙하는, 무슨무슨  필하
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피리 하나 불
줄 모르는 주제에.. 그때와  똑같은 얼빠짐과 허무맹랑함과 유치
함과 무모하고 열정섞인 꿈이 지금 내게 허락된다면, 나는  카메
론의 일원이고 싶다.

  왜 하필 보스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일원이고  싶으냐.. 원래
나란 사람이 예속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그렇다. 주체적으로  산
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오르기를 포기하고  열심히 쳐다만 보고 사는 쪽이
슬기롭다는 생각이고.. 좌우지간,  

  [타이타닉]의 초반에  수중탐사선이 등장하고 빌 팩스튼이  나
와서 동료와 나불나불하는,  무척 낯익은 영화적 설정을  접하며
이 영화  역시 카메론의 식구가  모여 만든, 갈데없는  카메론표
영화로구나 싶었다. 카메론과 일하는 사람들.. 그가 신임하는  배
우들, 스탭들..  나는 그들이 부럽다.  뭐, 영화 찍다  배고프대면
라면 끓여주고 라면 끓여먹은  냄비 설거지나 해 주어도 좋으니
그가 영화 만드는 현장에서  기웃거리고 얼쩡거릴 수 있다면 세
상에 부러울 게 없겠다. 장관  열 명이 부럽겠나, 억만장자가 부
럽겠나.. 어딜 가든 으스대고 잘난 척할 거다.  그리고.. 무병장수
할 거다.

  카메론의 크루..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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