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름 |
김주향 |
 |
| 제 목 |
[라스트 스탠드] |
|
김지운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라스트 스탠드]는 정말이지 나의 취향이로구나.
일단 내가 좋아하는 서부극이고,
18금 영화로 작정하고 갈 데까지 가 버린
메가톤급 화력과 강도 높은 폭력묘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장면의 구성과 통제가 잘 되어 있는데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총격과 폭발과 질주가 자아내는
강력한 사운드를, 앞뒤 정적과 교차시키는 감각적인 편집.
이것이 다음에 나올 폭력 장면에 대한 기대와 갈망을
중독적으로,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리오 브라보]나 [레드 리버]같은 하워드 혹스의 서부극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남성(이 영화에서는 여성 한 명 포함) 앙상블과
동지애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지만 막상 드라마적 짜임새보다는,
미서부 협곡지역 작은 마을 안팎의 지형지물을 아우르며
장쾌하게 펼쳐지는, 액션에 몰두한 영화, 문자 그대로 서부활극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악당 패거리들과 마을의 보안관팀 간에
전선이 형성되고 첨예화되고 해제되는 과정의 연출력은
제임스 카메론 초기작을 떠올리게도 한다.
비록 흥행결과가 좋지 못해 곧 종영될 처지에 놓이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진입 당시
[하드 타겟]이나 [브로큰 애로우]로 출발한
오우삼 감독만큼의 개인기와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주어진 자본과 기술을 한껏 활용하며 호연지기 잃지 않고
화끈하게 뽑아낸 웰메이드 액션물..
옥수수밭 카체이스 장면 같은 것은 꽤 근사하지 않은가.
이에 비해 그토록 집중하며 재미있게 보았던 [베를린]의 액션 장면들은 어떤가.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너무 빨리 휘발되고 말았다.
이유인즉슨 그 액션들이 안무 자체는 뛰어났을지언정
지형지물 및 로케이션과 밀착, 융합된 액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본이 부족했던 걸까 열악한 현지 촬영여건이 문제였을까..
엣지있는 매력남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베를린]의 액션 이미지는
더욱 빠른 속도로 잊혀져 갔을 지 모른다.
비교하는 김에.. 부분적으로 강렬한 액션씬이라면
차라리 지난해 본 [도둑들]의 몇 장면이 더 우수했던 것 같고
흐름으로서의 액션은 이 [라스트 스탠드]가 긴장감 있고 파워풀하다.
연기와 관련해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아놀드였다.
작년에 가르친 우리 학교의 영화꿈나무 윤호준 감독은
너무 차가운 박찬욱 영화보다 김지운 영화의 따뜻함이 좋다면서
자기도 김지운 감독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 있는데
그 따뜻함이 뭔지, 이를테면 부하가 총탄 맞고 죽어갈 때
운전석에 앉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소위 ‘표정연기’라는 것 앞에서
살짝 뭉클해지던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아, [스토커]와 별개로 박찬욱 감독도 어서 서부극을 한 편 만들어 주면 좋겠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미국 바깥에서 활동하던 명망 높은 영화인이
마침내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이라는 영화의 제국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 신고식은, 혹은 그 역사적인 첫 대결은
무엇보다도 서부극(의 자기식 해석)이어야 하지 않을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