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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본얼티메이텀]을 중심으로, 여행자로서의 본_2007.10.3

[본얼티메이텀]을 중심으로, 여행자로서의 본_2007.10.3


[원스]와 [비커밍제인]에 대한 기대심리가 저하된 틈으로
[본얼티메이텀]을 봐 버렸다.

이 영화는..
몇 달 전에 본 [다이하드4]에서 부족했던 그 무엇을 채워준다.

[다이하드4]..
재미는 있는데 진부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물량공세가 어느 시점에서 피로해지고
디지털 시대에 맞서는 아날로그 영웅이라는 세계관도
안이해 보였다. 시대반영성이 뒤떨어진다고 할까.
본 시리즈는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로 맞서는, 아니
디지털 시스템의 우위에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노마드적 인물을 내세운, 고감도 하이테크 액션물이다.
젊은이라면 어느 쪽에 더 열광할지 답이 나온다.

조직에서 용도폐기된 요원의 잃어버린 자기 찾기의 여정에
글로벌 단위의 동선을 부여하여 국제적 우수를
자아내고 있는 점도 본 시리즈의 독특한 아로마이다.
아래 게시물로 올린, 화려하고도 세심한 촬영지 선택에서 보듯이
본 시리즈는 일면 여행자 영화이다.
제이슨 본은 여권 하나만 가지고 파리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마드리드로 스페인에서 탕헤르로,
모로코에서 뉴욕으로 이동한다.
이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은 공항과 기차역과 터미널과
인터넷까페와 호텔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여행자의 동선이 낯익을 것이고 그 동선에서 묻어나는
어떤 무정부주의적인 혼돈과 객수가 그리울 것이고
여행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여행하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의 액션과 결합하곤 하는 유럽 대도시 교통의 허브들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돼 있어 어디나 비슷비슷한 외관의
비슷비슷한 구조물이고, 통행인파로 비슷비슷하게 소란스러운,
언젠가 나나 당신이나 한번쯤 스쳐지나갔을 법한 익명적 공간이다.
우리는 거기 멍하게 서서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망설여 본 적이 있다,
기차시간을 살피거나 비행편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본이 우리와 다른 점은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세계의 도시는 자기집 안마당인 것 같다.
그는 고도로 숙련된 여행자이기 때문에
결정이 빠르고 경제적으로 움직인다.
각국 언어에 능통하여 의사소통에 장애가 없으며
모든 차량을 다룰 줄 알며 모바일과 유무선인터넷을
순발력있게 활용하는 통신테크놀로지의 전문가이다.
비상시 쌈박질에 능할 뿐 아니라 그 평범한 외모로 인해
필요하면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는 재주조차 있다.
이런 점에서 본은 여행자의 궁극의 로망이다.
게다가 그는 그렇게 이 도시 저 도시로 움직일 때마다
경비 걱정은 안하는 것 같은데 그 돈이 어디서 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들의 여행이, 낯선 고장에 당도했을 때의
정신적 공황상태 내지 불안한 소요, 시행착오에 따른 낭비,
낭만과 모험을 꿈꾸었으나 결국 여행객 대상으로 디자인된
안전코스의 답사와, 디스플레이된 것들만 소비하게 돼 있는 예정된 궤도,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돼 있는 육신의 피로와 권태 등과 관련되어 있다면
본의 여행은 생사를 다투는 초인적인 대결의 세계이다.
간혹 우리는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후 제발로 찾아간 여행지에서
판타지가 일거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여행에선 우리를 매혹시켰던 그 영화들에서와 같은
긴급한 사연이 없고, 위기가 없고, 따라서 드라마도 액션도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서 있는 곳은 그 영화들의 어떤 장면같이
근사한 풍광을 약속하는 포토포인트가 아니며
결정적으로 그 영화들에서와 같은 음악이 흘러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파리를, 베를린을 걸을 뿐 그 도시와 밀착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본 시리즈에서 언제나 놀라운 것은 유럽 각 도시의 분위기나
지형지물의 특성을 액션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솜씨다.
[본아이덴티티]는, 난데없는 연상이지만 이를테면
[5시에서 7시까지의 끌레오]같은 누벨바그 영화만큼이나 생생하게
파리의 구석구석, 파리의 공기를 스크린에 주입시키고 있었다.
[본슈프리머시]에선 베를린과 모스크바,
그 중에서도 베를린 장면들이 강렬했다.
가보지 않았지만 베를린은 정말 억압된 섹시함이 있는 도시 같다.
베를린에 비하면 모스크바 같은 곳은 왜 늘 어수선한 시장바닥인지..
어쩐지 이쪽은 개방과 함께 도시의 영혼을 쉽게 팔아버린 느낌이 든다.

[본얼티메이텀]의 액션은 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데
영화 시작부터 보는 이의 감각을 사로잡던
매우 영리하게 설계된 워털루 역 장면도 훌륭했지만
나는 모로코 탕헤르를 배경으로 펼쳐지던 액션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북아프리카 휴양도시 전체가
경천동지할 백주대낮의 폭발을 가까스로 진정해 내던 장면..
지중해변 도시 특유의 파랑 하늘 아래 흰집들의 미로,
접시위성이 만발한 남루한 회교권 민가의 옥상들을
무자비하게 가로지르던 달음박질과, 신통방통 바이크 묘기와,
많은 점프와, 미처 따라잡기도 숨찬 좁은 방내 격투 장면..
심장의 고동이나 맥박을 닮은 존 파웰의 중독적 스코어와 더불어
이국의 도시를 도주와 추격의 고밀도 서스펜스 공간으로 버무려 내던 황홀한 시퀀스..
이 탕헤르 액션은 과거 홍콩의 육해공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급기야 시장판의 순대국집까지 쑤시고 들어가 난리법석을 떨던
전성기 성룡의 쿵후액션영화를 방불케 했고
이에 비하면 후반 뉴욕에서의 카체이스 장면은 대단히 평범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선
호감과 비호감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내 경우.. 믿기지 않는 고공다이빙 이후 수중에서 꼼짝을 않던 본이
잠시 후 살아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살짝 김이 빠지는 듯하더니
엔딩에 귀에 익은 모비 음악과 본의 개구리헤엄이 결합되는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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