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 영화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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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주향
제 목    [re] 안녕하세요. 주향님.

오랜만입니다, 태상님
정신여고 강당에서 있었던 결혼식 갔던 게 엊그제 같으네요,
아가씨도 종종 들르셔서 커플이 쫀득쫀득하고 민활한 게시물 남겨주시던 때도 생각나구요.
근황 반갑습니다, 그러나 요 부분만은 태상님의 실물을 돌이켜 보건대 믿기지 않는군요..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그녀의 남편은 잡아먹히기 일보직전이라거나'
영화와 영화감상문에 대한 열기.. 이것은 당시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의 '중심'을 통과해 온 우리는 나름 워리어.. 였다고 자부해도 좋지 않을까요..
여전히 필력이 녹슬지 않은 태상님의 박쥐 감상문 읽으며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예술체험의 텍스트화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완전 오랜만이죠. 제가 마지막으로 안부 전한게 언제적인지 생각도 잘 안 나네요. 주향님 잘 지내고 계신건, 이 홈피를 통해 전해듣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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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근황은... 별거 없어요. 결혼하면서 취직했더니 급격하게 사생활이 없어지고 월화수목금금금인 날이 7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 정도죠. 덕분에 아직 애도 없고 그렇네요. 사실 계획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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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아가씨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흔이신 분이 뒤늦게 공부를 하시겠다며 현재스코어 대학원생이라거나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그녀의 남편은 잡아먹히기 일보직전이라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를 빼면 매우 잘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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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가 다 타고난 은둔형외톨이라 사회생활이 엉망인데, 그래도 여기는 자주 들르고 있어요. 여전하신 필력도 만끽하고 있고... 요즘 드는 생각인데, 군대 막 제대하고 겉멋만 가득찬 상태로 도대체 커서 뭐가 될지 불안불안했던 제가 훗날 그래도 설계사무소 다니며 이정도 헛소리라도 하고 살 수 있게 된 건 주향님 덕이 큰 것 같습니다. 주향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글 썼던게 상당히 재산이 됐어요. 역시 교육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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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화감상문 안쓰고 있어요. 결혼하고 취직하면서 안쓴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태도가 좀 바뀌더라구요. 옛날에는 영화보면 뭐라고 쓸까를 생각했는데, 그런게 없어졌어요. 누가 들어줄 사람도 없고 하니. 그러다가 작년? 작년이죠? <박쥐>개봉한게. 보고 흥분해서 쓴게 있는데 그걸 올릴려구요. 정말 오랫만에 쓴거 같은데, 일단 그래도 이로써 제가 쓴 감상문은 전부 주향님께 보고하는 거가 되니까 소식없었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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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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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길게 늘려진 자살의 순간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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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어하는 수녀에게 송강호가 뭐라고 했었죠. 뭐... 큰 죄고 지옥갈꺼다, 대략 그런 얘기였을 겁니다. 잘도 떠들어대더니 이 사람, 이제는 자기가 자살을 시도합니다. 물론 신부다보니 수녀보다는 단수가 높아서 그 외국의사가 지적한대로 "순교를 가장한 자살"을 시도하죠.(그 절묘한 표정관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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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까지 셀 수 있다는 신 앞에서 감히 그런 얄팍한 수를... 그런데 원래 인간의 신앙이라는게 눈가리고 아웅 천지인지라, 고도의 마인드 컨트롤로 무장한 우리의 신부는 결국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 병원신세를 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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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차저차한 사연을 거쳐 흡혈귀가 된 그가 아무리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건 아니잖냐"고 울먹여 봐야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병은 신부인 주제에 시도하고 만 자살의 결과인 걸요. 큰 죄고 지옥갈꺼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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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벌하는 방법으로 가장 근사한게 뭘까요. 일단 그의 신은 죽을 듯 죽을 듯 못 죽게 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혈청을 맞...먹지 못하면 온몸에 수포가 도지고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 어라. 이것만으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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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의 송강호는 김옥빈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옥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삶의 희망을, 사랑을, 여자를 쥐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위태위태할 때 여자를 주는 건 그사람 신의 전공이죠.) 그리고 이 여자는 송강호의 남은 삶을 최대한 거지같이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디자인된 괴물인 것이 또한 당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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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살펴볼까요. 일단 소녀와 창부의 결합은 필수죠. 낮엔 학대받는 신데렐라이다가 밤엔 사제복을 벗겨가며 강간을 서슴치 않는 색정광입니다. 정사의 끝에 자그마치, 울음을 터트리며 절정에 도달하는 선데이서울식 잠버릇은 또 어떤가요. 수틀리면 바로 안면몰수, 신세타령으로 돌입하여 결국 우리의 신부님 입에서 "언젠 귀엽다며 씨발녀나..." 따위의 험한말 나오게하는 깜찍한 여우짓 또한 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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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은 병의 능력으로 얻은 여자입니다.(붕대감은 성자로 안수하러 갔다가 만나잖아요.) 뒤에 가면 병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사흘만에?) 부활하기도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송강호의 지옥을 유지하는 두 축의 하나입니다. 흡혈병이 작용이라면 김옥빈은 반작용으로, 송강호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죽이는 캐릭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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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심지어 김옥빈은 흡혈병과 합체하는 경지에 이르는 듯 합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이 안나는데 서로 손목을 긋고 일종의 원활한 혈액순환을 도모하다가 서로 손가락 발가락 물고 빨고하는 괴상한 정사장면... 사람 형상이긴 한데(심지어 김옥빈하고 송강호인것도 알겠는데) 왠지 생전 처음 보는 무슨 자웅동체 생물같아 보이던 그 장면 말입니다. 그건 송강호와 김옥빈이 이제 마침내 그들의 사랑을 꽃피운 나머지 하나가 되었다더라, 인 장면이기도 하고 그들이 서로에게 병원균으로 둔갑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 병의 증세는 신체 말단부부터 썩어들어간데나 뭐래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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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로 변신한 이후에, 김옥빈은 모종의 주체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친 덕에 힘과 능력을 얻고 방해꾼들 다 대략 정리했으니 그 인생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구요. 다크서클이 사라진 것만 봐도 그 해방감의 정도를 알 수 있죠. 송강호와 그만 헤어지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는데... 근데 이 여자는 기본적으로 징벌이란 말이죠. 송강호의 지옥을 구성하는 두 축이요. 여기서 송강호의 반응이 끝내줍니다. 자그마치 자기 가지마, 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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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은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둘의 상황이, 영화적인 과장을 걷어내고 나면 무척이나 보편적이고, 그래서 다소 심금을 울리는 연애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고통을 뛰어넘는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를 하는게 아니에요. 세상은 지옥인데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벗어나면 섭섭할 거 같은, 근본적인 노예근성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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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박찬욱의 전작들과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지점이 여기 어디쯤일 겁니다. 복수 3부작의 전체적인 주제는 2부의 "복수심이 성격이 된 것 같아"라는 대사로 요약될텐데요. 그러니까 비록 처음에는 화가 나서 복수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복수를 해야해서 화를 내는게 필요해지는 정서적인 본말전도를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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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박쥐]의 저, 죄의 결과로 시작된 지옥이었으나 이제 지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 하는 송강호의 상황은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냐는 거죠. 이걸 박찬욱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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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쉴새없이 제 눈을 간지렀던 환상적인 카메라 워킹과 편집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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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이동 카메라 쇼트들에 갑작스러운 빅 클로즈 업이 개입하고, 액션 영화에서는 거의 금기시되던 와이프와 페이드 아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용되어 스피디한 감각을 오히려 배가시키며, 종래에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할 때에만 쓰이던 디졸브로 동일 장면 내의 쇼트와 쇼트를 이어 붙임으로써 전혀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천동지의 액션 장면의 끝에, 돌연한 상징 쇼트-날카롭게 우짖는 까마귀와 독수리의 클로즈 업-을 순간적으로 몽타지 시키는 과감성은 또 어떤가. 테크닉 자체야 이미 수없이 사용되어 온 것이지만 그 응용의 독창성이 여기에 이르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장면 전환에 있어서의 교과서적 고전 이론들을 뒤엎고 구사된 이 기법들은 영화 편집의 역사에 그야말로 '장면 전환'을 이룩한 것이었던 바, 이는 스피디한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으려는 감독의 고민을 해결해 준 일종의 편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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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 매드맥스 /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비디오 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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