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 영화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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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re] [데드맨] 영화, 그리고 음악





  [데드맨] - 1998. 2. 21 -    

  1.
  [데드맨]은 미국살이에 대한 비유적인 영화로 보인다. 짐 자무쉬의
이전 영화들과의 맥락에서 이런 추측을 해 본다.    

  그는 미국살이에  대해 이미 '천국이라  하기엔 낯설다'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시니컬한 어조로 내뱉은 바 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시작
한 그러한 음성과 어조는 내내 계속되어, 어처구니없는 연유로 감방 신
세를 지게 된 톰 웨이츠와 존 루리, 로베르토 베니니(이 사람, 이 배우
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다. 사실은 말보다 웃음이 앞서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삼인의 감방 탈출극을 통해 이방인의 미국 생활 실패기를
다루었던 [다운 바이 로], 같은 여관에 투숙하게 되는 세 종류의 군상을
통해 미국을 역시나 어둡고 따분하고 낯설게 그린 [미스테리 트레인],
LA의 택시기사 위노나 라이더와 뉴욕의 택시기사 아민 뮬러 슈탈을 통
해 미국 사회의 단면을 스케치한 [지상의 밤], 이러한 일련의 재기 넘치
고 냉소적인 영화들에 이어 그는 [데드맨]에 이르렀다. 이제 [데드맨]에
서 감독은 미국이, 낯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옥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2.
  약속된 일자리를 찾아 클리블랜드에서 머신이라는 마을로 향하는 윌
리엄 블레이크의 열차 여행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되고 있다. 석탄이나 싣
고 다닐 법한 낡은 열차에 윌리엄의 눈 앞에 보이는 승객들은 촌스럽고
늙고 지저분하고 무표정하다. 마치 유령 같은 모습들이다.
  윌리엄이 도착한 곳은 미국의 옛서부와 똑같이 생겼는데 거기엔 낭
만적인 총잡이도 정의로운 보안관도 아리따운 아가씨도 없다. 그곳은
더럽고 살벌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에누리 없는 지옥도의 풍경.
그는 지옥행 열차를 타고 온 것이다.
  윌리엄은 일자리는 커녕 어이없는 살인극에 휘말려 총잡이들과 보안
관에게 내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의 대부분은 윌리엄이 현상
범이 되어 추격당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혈통으로 보나 이력
으로 보나 행태로 보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자칭 '노바디'라는 한 인디
언을 만나 동행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 우발적인 살인을 여러 번 저지른
다. 경위야 어쩌든 선량한 그는 어느덧 폭력의 중심부에 들어와 있게 된
다. 이곳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악몽의 땅이었던 것이다.  
  
  3.
  [데드맨]은 미국의 건국신화이자 수많은 미국적 아이콘의 집산지이기
도 한 서부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 영화들에 비해
퍽 장엄하다. 그런데 뭐랄까.. 그 공식을 좀 우습게 본다는 점에선 한편
으로 상당히 공격적인 영화다. 박물관에 걸린 지옥도처럼 그려놓은 서부,  
상황에 짓눌리는 인물,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인디언, 김 빠지고 썰렁한  
추격전, 미국이 건국과정에서 유린하고 거세해 버린 후 교묘히 박제해
놓은 인디언 문화를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이 맞이하는 통과제의의 형
태로 비주얼화해낸 절정부..  
    
  4.
  [데드맨]을 포함하여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보며 내리는 내 내름의
결론은 그의 영화들이 비교적 미국에 대한 믿을 만한 견해를 담고 있
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살며 미국을 이야기하고 미국에 대해 사유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 레벨은 돼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러니
칼하게도 외곽에서의 시선을 꾸준히 견지하는 이런 영화들을 통해 가장
미국적인 것, 즉 이방인 의식의 필연적 산물이겠지만, 자국을 거리감 두
고 살필 수 있는 데서 오는 부단한 자기 갱신력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
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정수, 미국의 힘이 아닌가 한다. 할리
우드가 미국적인가?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는 세계적일 뿐이다.
  
  5.
  그러나.. 정작 [데드맨]이, 감독의 영화세계라는 커다란 맥락에 상관
없이 그저 한 편의 영화로서 내게 남긴 침전물은 미국살이니 뭐니 하
는 내용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몹시도 시적이며 음악적이며 주술
적인.. 그렇다, 어떤 리듬이자 호흡법이다.  
  영화를 보며 특별한 리듬 속에서, 호흡 속에서 나는 조니 뎁과 함께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듯하였다. 열차 안, 수직의 나무숲을 통과하는
지리한 여정과 단속적인 암전, 어린 사슴을 끌어안고 구덩이 속에 웅
크리고 눕는 윌리엄, 시체가 다 된 윌리엄이 나룻배를 타고, 아마도 신
화 속의 스틱스임이 분명한 저 지옥의 강을 건너는 장면, 내 앞에 운명
처럼 출렁이는 물결, 대해 너머로 내세에까지 영원히 이어질 듯한 을씨
년스러움, 최면을 거는 듯 강렬하게 진동하는 일렉트릭 기타.. 영화를 본
후 한 달여가 된 지금, 위와 같은 잡설이라도 늘어놓게 하는 동력은 실
상 이런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