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
- 영화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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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주향
제 목    호금전의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춘각의 풍파]를 계기로
호금전 감독의 주요작을
구입 가능한 선에서 최상의 품질을 가진 영상물들로 챙겨보았다
종합하면 연대별로 아래와 같다

1966 [대취협] Come Drink With Me
1967 [용문객잔] Dragon Gate Inn
1971 [협녀] A Touch Of Zen
1973 [영춘각의 풍파] The Fate Of Lee Khan
1975 [충렬도] The Valiant Ones
1978 [공산영우(空山靈雨)] Raining In The Mountain
1979 [산중전기(山中傳奇)] Legend Of The Mountain

베스트는
[용문객잔] [협녀] [공산영우]를 들고 싶다
명작은
한 장면도 버릴 게 없이
전 장면이 훌륭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정수를 담은
강렬한 두세 점의 명장면을 보유한 영화이다
이런 영화의 경우 감상을 마치고 나면
그 여운에.. 허기가 지면서
배우 인터뷰, 평론가 코멘터리 등으로 구성된
서플까지 남김없이 챙겨보게 된다
예전에.. 영화의 감흥을 못 이길 때면
어떻게든 주요 장면을 떠올리며
어쭙잖은 문장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흥분이 가시기 전, 기억이 사라지기 전의 생생한 기록,
이것이 영화가 끝나고도
그 영화를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소유, 좀 더 정확한 소유이지
문장력의 진화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러한 예전 방법에 대한 그리움은 없다
가끔은 스틸사진으로도 만족하지만
무엇보다 유튜브라는 동영상 창고가 있는 오늘날
기억하고 싶고 마음에 저장하고 싶은 장면들을
조금만 노력해서 가져올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그러니 지금 시대는 내가 꿈꾸던
낙원의 일부가 실현된 시대인 것도 같다
이론적으로는..


[대취협]
호금전이 쇼브라더스에서 만든 작품
아주 그냥 야물딱진 정패패의 매력 마력



[용문객잔]
홍콩무협영화의 이정표가 되었다고 하는 작품
흥행열풍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아무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일단 논스톱 액션이고
듀엣 트리오 쿼텟 퀸텟 옥텟 심포니까지
다양한 조합의 대련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앞뒤 맥락 포함한 위 장면의 확장된 클립


위 장면에서 상관영봉과 대결하는 한영걸은
호금전의 거의 모든 영화에 등장,
액션 안무를 담당하였다
이 영화의 사막은 몽골이나 멕시코 사막의 느낌이며
작은 요새처럼 견고해 보이는 객잔은
세트 자체로도 아름답다
그리고 객잔 내부 공간의 활용은 언제나 그렇듯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다이내믹하고 입체적이다
[영춘각의 풍파]도 그랬듯 장면 장면마다
잘 계산된 세심함과 완벽주의가 느껴진다
호금전 감독의 활극 스타일은
매사 서두르지 않는 과유불급의 연출인데  
그래서 지금 기준에 뭔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그것을 여백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호금전 영화에서 대체로 주연 여성을 보조하는
무술의 달인이자 정의로운 역을 맡곤 했던 백응이
여기서는 최고 기량의 소드마스터이자 환관인 악역을 연기했다
환각 속에 청심환까지 먹고 사이코패스같이 달려들다
모가지가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도 재미있는데 찾지를 못하겠다


[협녀]
세 시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대작
특히 서구 비평가들이 왜 그리
이 영화에 환호했는지 알 것 같은,
이를테면 불교의 모습을 한
초월과 선계의 이미지가 여기 있다
그런 호들갑, 그런 수선 피우기, 그런 관념성 추종..
이 영화를 둘러싼 그런 분위기가 싫었던 적이 있다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와호장룡]도 싫었다
심리적 반동이었던지..
굳이 아트이고자 하지 않으며
노골적인 영웅주의와 남성서사, 서슴없는 폭력표현,
철철 흐르는 피와 땀 냄새, 고깃덩이같은 육체로 점철된
장철의 영화가 내 선호였다
그러나 세월 지나니 수용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클래식은 클래식인 것이다
숨을 멎게 하는 대나무 숲 활극 장면
봐도 봐도 그 찰나의 순간에 내 눈 앞에 오간 것의 비밀을 설명하기 어렵다


정성일씨 표현대로 ‘피안에서 속세로 건너오는 듯한’ 승려들



[영춘각의 풍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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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도]
영어 자막을 읽는 데 지쳐 국내 디비디를 주문하였더니
화질이 안 좋아 그런지 내용이 단조로웠던지
여타 작품들보다 재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엔딩은 멋있었다
명나라 충신들이 왜구를 무찌르는 이야기여서
풍경4부작 중 해안 절경이 주 배경이 되고 있다
주요 액션 장면에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풍이 가장 예쁘게 나오고
백응이 그나마 영웅적으로 나오는 영화이다
홍금보가 악역으로 열연하는 마지막 대결 장면은 화려하면서도 깔끔하다



[공산영우]
대사찰의 주지승을 뽑는 일종의 콘클라베같은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무리들이 절에 모여들며 후보가 추려진다
불교적인 주제의식이 뚜렷하며
내가 볼 때 [협녀]보다 완성도가 뛰어난 웰메이드 영화이다
해인사 불국사 등 한국의 유명 사찰과 종묘에서 촬영되었는데
해인사 팔만대장경 서고를 둘러싼 보물 훔치기 모티프가
영화에 수수께끼와 재미를 더한다
역시 한국에서 찍은 [산중전기]와 달리
이 영화 속 한국의 자연경관은 매우 아름답고
특히 사찰 공간의 묘사가 탁월하다
사찰의 3차원 입체 공간 및 건축적 디테일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아래 서풍과 귀욤저팔계 2인조의 티키타카 장면은
실로 우리의 망막에 활동사진의 쾌감을 안겨주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장면이 있다
낙엽을 쓸며 도망가고 쫒아가는 다급한 발소리들,
공기와 마찰하는 옷자락 사운드,
예리한 음악으로 구성된 나무숲 속 추격전이다
이 장면의 방향감, 속도, 움직임은 숨막힌다
이어지는 그 유명한 무녀들의 활강 장면보다
나는 이 장면이 더 우수한 것 같다
무녀들이 레드와 옐로우 색감의 옷자락을 휘날리며
수직 활강하여 서풍을 포박하는 장면은
현란하고 아름다운 코르 드 발레처럼 연출되었다
배경은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자주 보는 소나무 숲이다
강릉쯤이 아닐는지



[산중전기]
[공산영우]와 마찬가지로 해인사 불국사에서 촬영하였고
설악산의 백담계곡이나 남한산성,
동해안일까 제주도일까 주상절리 해안으로 추정되는 장소도 보인다
이 장소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고 살풍경하기 그지없다
[협녀]의 억새 우거진 고택 같은
황폐한 아름다움과 버려진 은신처의 아우라가 없다
한 마디로 풍경을 채우는 재료적 긴장이 없다
이런 경우 풍경은 여백이 아니라 공백이 된다
공포물을 염두에 둔 의도적인 접근이었는지
감독의 눈에 비친 당시 한국 산수가 그 모양이었던 건지
예산이 부족해서였는지 원인은 알 수 없다
아무튼 [산중전기]는 액션에 침범당하지 않은 호러물로
초자연적인 귀신 이야기, 즉 전설의 고향이다
끈질기고 지독한 귀신 역의 서풍이 두드리던 북소리 주술과
공들여 연출한 듯한 마술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세 시간은 너무 길다
트레일러는 근사하다


호금전의 남성 캐릭터, 남자배우들은 정말 특기할 만하다
대접이 이리 불친절할 수가..
잡다하게 나오긴 하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머리에 오래 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례로 매번 착하지만 눈치 없는 서생으로 나와
이상하게 짜증을 유발하는 석준.. 그는 감독의 페르소나였을까
존재감이 분명한 것은 언제나 서풍, 상관영봉 같은
여성 캐릭터, 여자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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